김윤기 기념사업회 이사로 선출되면서 결의 밝혀

박유진 시의원이 고 김윤기 열사의 생애 연혁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의회)
박유진 시의원이 고 김윤기 열사의 생애 연혁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의회)

[SC시민의회] 박유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평구 제3선거구/행정자치위원회)은 지난 3월23일 고 김윤기 기념 사업회 이사에 선출되면서 민주화 유공자법의 조속한 통과를 강력히 촉구했다. ‘다시 함께 꾸는 꿈 김윤기 기념 사업회’ 가 발족했다.

‘김윤기 기념사업회’ 출범식이 지난 3월 23일 오후 3시 서울시 중구 정동 소재 민주노총 12층 중회의실에서 열려 ‘다시 함께 꾸는 꿈’이라는 주제로 출범식과 창립총회를 갖고 35년만에 다시 열사의 뜻을 이어가기로 하였다.

이날 창립총회는 국민대학교 민주동문회가 주최하였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유가협),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추모연대), 전국대학민주 동문회협의회, 민주유공자법 제정추진단, 5.3(인천 민주항쟁)동지회,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등이 참여하였다.

故 김윤기 열사는 1964년 12월 18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1983년 3월 국민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 동아리 ‘청문회’에서 활동하며 사회의 민주화와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3월 23일 김윤기 기념사업회 출범식 참가자 일동의 기념사진 (사진제공=서울시의회)
3월 23일 김윤기 기념사업회 출범식 참가자 일동의 기념사진 (사진제공=서울시의회)

열사는 1986년 5·3 인천 민주항쟁에 참가하여 실형 1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 후 1988년 7월 성남 덕진양행에 입사했다. 열사는 동료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1988년 11월 29일 민주노조를 결 성하고 위원장에 선출되어 회사 측과 교섭에 들어갔다.

그러나 89년 1월 중순 사측은 ‘공장 이전’이라는 명목으로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없애려 위장폐업을 시도하였다.

이에 덕진양행 노동조합은 열사를 중심으로 굳게 뭉쳐 ‘공장 이전 철회와 위장폐 업 분쇄’를 외치며 2월 16일부터 파업 농성에 돌입하였다.

4월 3일, 마지막 협상마저 결렬되자 이에 격분한 열사는 분신으로 항거하며 젊 디젊은 청춘을 노동해방제단에 아낌없이 바쳤다. 열사의 나이 26살이었다.

박유진 의원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기 위해서는 하루속히 민주 유공자법 통과를 위한 각계의 촉구 목소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김윤기 열사의 어머니는 현재 86세의 고령이시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이미 80대 이상의 고령자로서 인생의 마지막 소원인 민주유공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법안 통과를 위해 곡기를 끊고 5일간의 단식투쟁을 진행해왔을 만큼 절박한 호소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유공자법은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열사들이 자식이 없이 세상을 떠났기에 자손에 대한 특별한 혜택 자체가 불가능하며 오직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다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법안으로써 마지막 국회 통과 과정만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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