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최근 『만 원의 행복 Ⅱ』를 발간했다. 고등학교 졸업 50주년과 산우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낸 책이다. ‘만 원의 행복’은 월 회비 1만 원으로 우리가 누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한다. 2013년 100회 산행을 기념해 첫 번째 『만 원의 행복』을 낸 지 7년 만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 우리 친구들과 함께 한 트래킹, 해외여행, 캠핑과 매월 산에 올랐던 족적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그 기록을 모아 엮으니 46배판 형으로 420여 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 되었다.

  먼저 동해안 해파랑길 트래킹. 우리는 2012년 5월부터 2019년 6월까지 매년 1~2회, 4박5일 일정으로 모두 13회에 걸쳐 동해안 770km를 걸었다. 연인원 124명이 참가해 1회 차당 평균 9~10명이 함께 했다. 우리가 해먹고 걷고 잔 날은 57일로 한 번 갈 때마다 평균 4.4일 걸렸다. 이 중 오갈 때 이동일 각각 0.5일과 비가 와 걷지 못한 날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걸은 날은 41일로 하루 평균 18km를 걸은 셈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혼자’가 아닌 ‘함께’ 풀었기에 더 큰 보람을 느낀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우리는 이 먼 길을 거북이처럼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 마쳤다. 걷기는 내가 내 삶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또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만나고 자신과 대화하는 귀한 일이다. 속도를 줄이면 보이는 게 많아진다. 자연 경관은 물론 평소 지나치던 내 마음속까지도 잘 보인다. 조금만 천천히 가면 인생이 지금보다 더 즐거워진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토끼 같은 삶보다는 때론 옆도 뒤도 돌아보는 거북이 같은 삶이 더 소중한 이유다.

  세상은 넓고 볼 곳은 많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아홉 차례 바깥나들이를 했다. 가족여행, 그룹여행, 배낭여행 모두 다 의미 있지만 친구끼리 하는 여행 또한 가치 있다. 우리는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필자는 해외여행 할 때 세 가지 원칙을 지키려한다. 여행 갈 곳을 미리 공부한다, 여행지 사람, 음식, 문화를 배운다, 여행기를 쓴다 등이다. 이렇게 하면 같은 여행을 해도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인생에 삼여(三餘)라는 게 있다. 사람은 평생 살면서 하루는 저녁이, 한 해는 겨울이,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도 늘 변함없는 우정과 사랑으로 감싸주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여행에는 유전(有錢)여행과 무전(無錢)여행이 있다. 전자는 육체적으로 편하지만 머리에 남는 게 별로 없다. 후자가 좀 성가시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적잖은 잔상(殘像)을 남긴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대자연에 파묻혀 숙식을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밥도 짓고, 국도 만들고, 고기도 굽고, 마지막 설거지까지 모든 걸 우리 힘으로 했다. 그러면서 친구도 더 잘 알게 되고, 그만큼 정도 더 깊어졌다. 불가(佛家)에서는 하룻밤, 한 집에서 보내는 것을 3000겁(劫)의 인연이라고 한다. 1겁은 4방 40리 가득 찬 겨자를 100년에 한 알씩 꺼내 다 없어지는 긴 시간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했던 힐링 캠프가 더욱 각별하다. 

  웰빙시대 세 가지 키워드는 ‘보자’ ‘놀자’ ‘쉬자’라고 한다. 함께 얼굴 마주보며 놀고 쉬는 것처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게 없다는 뜻일 게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매월 정기산행을 하면 이 모든 게 한꺼번에 해결된다. 살다보면 가슴이 벅찬 경험도 하고,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을 겪기도 한다. 기다려지는 모임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 안 내켜도 할 수 없이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자리도 있다. 필자에게 한 달에 한 번 있는 산우회 만남은 오랜 기다림 끝에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창이다. 이렇게 만난 지 어언 15년이 넘었다. 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이 모임 대부분의 기록이 있다는 거다. 기록이 없으면 한낱 머릿속에만 있는 아름다운 추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은 추억을 넘어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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