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서하주노 김준만


유럽·미국·동남아 활약 후 국내 복귀...다채로운 레퍼토리로 클래식 저변 넓힐 것 

 

서울시티 애독자들께 소개 및 근황을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테너 서하주노 김준만입니다. 한국에 온지 4년 차입니다. 저는 한국보다는 주로 유럽에서 많이 활동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후 정식 데뷔했고, 32년 간 미국과 유럽 등지의 120개 도시에서 1770회의 메이저 극장공연, 500회 이상의 단독공연을 했습니다. 작년 6월 6일에는 오페라와 재즈, 피아노 앙상블 콜라보 공연 ‘테너 서하주노 김준만의 One Fine Day’를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개최하기도 했죠. 그렇게 오랫동안 공연을 하다 보니 최근엔 공연이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식상하고 지루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성악을 벗어나 1시간 반의 공연을 재미있고 풍성하게 구성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내용도 단순한 1950~60년대 이탈리아 칸초네, 라틴 음악을 재즈, 삼바 등의 스타일로 편곡한 버전들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는 굉장히 희소성 있는 무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월드슈퍼모델협회에서 예술단장을 맡고 있는데요, 유지영 디자이너와 함께 패션쇼와의 콜라보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즉 저의 현재 음악 지향점은 콜라보 또는 퓨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꾸린 팀 세션들의 면면을 보면 아코디언,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기타, 바이올린 연주자 등 다양하거든요. 친숙하지만 저만의 개성이 담긴 음악과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연주하고 있습니다. 

 

성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희 외할아버지는 박구 영화감독이시고, 외할머니는 한국 초대 오페라 가수 서혜영님이십니다. 이런 집안환경에 영향을 받아 성악을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는 기억이 없지만 말을 배울 때부터 노래를 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직업으로 삼기엔 가족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게다가 학교 다닐 때는 완전 말썽꾸러기였어요. 저를 학교 앞으로 넣어주면 뒤로 나왔죠 하하하. 그런데 다행히도 건축가이신 아버지께서 음악을 좋아하시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셔서, 23세에 국내에서 데뷔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한번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습니다. 어렵사리 떠난 길이라 가진 게 없었고 은근한 동양인 차별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다행히 좋은 스승님들을 만나 본격적인 음악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 때문에 인생이 바뀐 거죠. 그 후 이탈리아에서 10년 이상 활동하면서 유럽, 미국, 태국, 싱가포르, 홍콩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슬럼프도 겪으셨을 텐데요. 

얼마 전 심근경색증이 와서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골든타임을 잘 지켜서 다행히 지금 이렇게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는 당뇨까지 겪었죠. 가족력도 없었는데 순전히 음악 활동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큰 슬럼프가 아니었나 싶어요. 다행히 지금은 치료와 약을 병행하고 있어 괜찮지만 그 당시에는 노래가 전혀 안 나올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술, 담배 다합니다. 대신 잘 먹고, 잘 잡니다. 목에 가장 좋은 건 잠이니까요. 적당한 운동도 하고요. 저만의 목 관리 비법이라면 비법이죠. 

 

음악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관객 분들께서 항상 반겨주시고 아껴주셔서 공연 때마다 항상 보람찹니다. 음악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죠. 제가 세계 곳곳에 공연을 다니면서 상류층 앞에서 공연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 분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아기 같았습니다. 사실 제 성격 자체가 순수한 편입니다. 레어하다고 할까요? 혹자는 날 것의 야성미가 저에게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순수하고 솔직하게 음악을 하면서 관객에게 다가가니까,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또 솔직하게 음악에 빠져들곤 합니다. 

 

스타일이 굉장히 좋으십니다. 패션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평소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외모 관리는 따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옷과 신발은 좋아합니다. 특히 신발은 200켤레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성악을 안했다면 옷이나 신발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무대의상 같은 경우도 친분 있는 디자이너에게 과하지 않은 선에서 직접 주문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또 시간 있을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요. 아 그리고 제 몸에 타투가 많은데요, 어렸을 때 공연을 마치고 기념으로 많이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후진양성에는 관심이 있으신가요?

제가 10년간 아이들을 가르쳐봤습니다. 클래식의 불모지 태국에서 한 대학의 외래교수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학생을 가르친다는 건 엄청난 시간투자, 노력, 인내가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히나 그들의 인생을 책임지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뛰어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잘 끌어줘야 하고,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죠. 게다가 제 성격이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해서 현재로서는 가이드나 원 포인트 레슨 정도만 해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고요, 일단 제 음악에 더 열정을 쏟고 싶습니다. 

 

성악을 시작하고 싶은 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성악은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지난해 돌아가신 이탈리아의 거장 ‘움베르토 보르소’께 사사한 것이 지금의 테너 김준만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께서는 저의 보컬 스타일을 이탈리아식으로 완전히 바꿔주셨고, 새로운 음악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공연하면 일부 관객들은 저를 이탈리아 성악가로 착각할 정도였거든요. 또 유명 소프라노인 ‘카티아 리차렐리’에게도 잠시 사사하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테너는? 

최근엔 페루 출신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저와는 전혀 다른 보이스 컬러를 가진 로시니 테너입니다. 그의 소리를 정말 좋아합니다.

 

성악가로서의 자존감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은 강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제 자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는 시골에서 혼자 지낼 때가 많다보니 남는 시간에 심도 있게 공부를 했습니다. 소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신체도 알아야한다는 생각에 해부학까지 공부했죠. 그러다보니 저의 소리를 바로 알게 됐는데, 그 때 저는 제 자신이 대가(大家)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하이C를 내야하는데, 저는 하이C를 낼 수 없는 성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 나는 중가(中家)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이후부터는 단독공연 위주로 무대에 오릅니다. 단독공연을 하면 하이C가 나오는 노래라고 해도 반음정도 내려서 할 수 있고, 모든 노래를 제 스타일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어느덧 1500여곡의 레퍼토리를 갖게 됐고, 저만의 풍성하고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서하주노 김준만, 이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름에 대한 스토리를 말씀해주세요.

지금까지 테너 김준만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준만’이라는 이름은 외국 사람들이 발음하기 쉽지 않아 ‘준호’로 개명했죠. 아직도 외국 사람들은 저를 ‘준호(주노)’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분이 호를 지어주셨는데, 초목이 우거진 풍요로운 넓은 들판을 뜻하는 ‘서하’였습니다. 그래서 서하와 주노를 붙여 ‘서하주노’가 됐고, 한국에서는 김준만이 익숙하기 때문에 통합해서 테너 서하주노 김준만이라고 명명했어요. 서하주노라는 이름 때문에 가끔 어떤 분들은 저를 서씨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라마다서울호텔 라운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하주노 김준만

클래식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솔직히 저도 클래식이나 성악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입문자들은 처음부터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으면 부담스럽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죠. 처음엔 드뷔시의 작품처럼 잔잔한 피아노 소품이나 가벼운 가곡으로 시작하면 훨씬 편하실 겁니다. 또, 식사를 할 때나 사랑하는 사람과 와인을 마실 때 등 그 상황에 맞는 음악을 선택하면 분위기에 취해서 음악이 로맨틱하게 다가올 거예요. 아직 몰라서 그렇지 알게 되면 클래식에 한없이 빠져들게 될 겁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연락주세요. 성심성의껏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현재 라마다서울호텔 라운지에서 매일 공연을 하고 있고, 호텔 지하 명품관이 곧 오픈하면 멋진 이벤트도 계획 중에 있습니다. 또 대구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대구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당분간은 힘들 것 같군요.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면 늦어도 하반기에는 대구 아양아트센터와 수성아트피아 등에서 공연을 꼭 성사시킬 생각입니다. 대구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서울도 개척해야 하고 할 일이 참 많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풍성한 공연, 멋진 모습으로 찾아뵐테니 기대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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