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뮤움DB * 작가 : 이기은(Lee Gi-Eun)1981년 출생고목순지에 먹, 73x73cm, 2010, 개인소장

충치 / 양여천 시인

풀 한 포기 뽑혀나간 자리에
하나의 삶이 터를 내렸던 자리에
뿌리까지 송두리채 뽑혀나간 자리에
아픔이 도사리고 앉았다
내 몸의 내 입안에 내 뼈에 나의 턱에
서른 두어해 자라나서 자리잡았던
작고 조그만 뼈조각들 중에 하나가
뿌리까지 송두리채 뽑혀나갔다
살을 파고드는 고통과
살을 드러내는 고통과
뼈를 헤집는 고통과
뼈가 끊어지는 고통 중에
그 무엇이 좀 더 참을만한 것일까?
참을만한 고통 견딜만한 고통은 하나도 없더라
고통이란 참고 견디고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무뎌지고 덜 느끼게 되고 어느 한 순간 잊어버리고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더라
비겁해 보일지 모르지만
직면해서 그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 외면하고
귀막고 눈감고 고개를 돌린 채 지나쳐 달려가고 있는 것이더라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통은 그냥 간지러운 느낌이 될 수도 있더라
살아야 하니까 그냥 고통에도 적응하고 있더라
다시 만나기까지 떠올리지 않고 살거다, 이 고통을
썩어가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랬지만 또 반복할거다

아픔이 기억나지 않는 만큼 사람은 바보같고 그래서
인생은 살만하다, 아파서 죽지 않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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