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위 현진스님 여의도포교원장|월드머시코리아 이사장
[인터뷰] 무위 현진스님 여의도포교원장|월드머시코리아 이사장
  • 신환철 기자
  • 승인 2019.02.15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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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간 동토의 섬에 부처님 말씀 꽃을 피우다
NGO.월드머시코리아, 국내외장학금 및 교육환경개선의 민간외교 첨병 활약

 

먼저 일반인들에게 포교원이라는 곳이 다소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곳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쉽게 말해 도심 속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속에 위치한 산사와는 달리 포교원은 대중들과 함께 생활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곳이지요. 도심속불교, 대중불교는 생활 속의 사원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여의도포교원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저는 방배동에 처음 포교원을 설립했고, 이후 목동에도 포교원을 세웠습니다. 이후 동기들에게 방배동과 목동 포교원을 넘겨주고 1985년 이곳 여의도에 정착해 여의도포교원을 개원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여의도는정치, 경제, 방송의 중심지였지요.
그 중심지에 들어가 포교를 하겠다는 뜻을 품고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여의도에는 대형교회는 많고 인구는 적어 불교전법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만, 묵묵히 부처님의 뜻을 전하다보니 신도님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오늘까지 34년 동안 포교원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여의도포교원 법회광경
여의도포교원 법회광경

대중불교 운동을 하게 된 동기와 도심불교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도심 속 대중불교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5.18민주화운동과 광주사태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지요. 그때 조계종에 10.27 법난이 발생했지요. 10.27 법난이란 제5공화국 출범을 앞두고 정권을 장악해 나가던 전두환신군부 세력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관심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승려들의 비리를 볼모로 하여 군인을 동원해 전국의 사찰 및 암자 등 5,731곳을 일제히 수색하고, 조계종의 스님 및 불교 관련자들을 강제 연행한 사건입니다. 그때 무려 1,776명이 검거되었고 각종 폭행과 고문까지 가해진 참혹하고 치욕적인 사건이었지요. 저는 당시 일본 다이쇼대학에서 연수 중이었는데, 한국 조계종의 승려들이 탄압받고 있다는 일본TV의 뉴스를 듣고 분노가 일어 일시 귀국했지요. 그런데 곧바로 조계종 승려에 대한 출국 금지령이 떨어지면서 일본유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포교운동에 전념하기로 결심했지요. 포교운동을 결심한 하나의 이유는 당시 조계종 불자들의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의 마음은 참담한 심경이었지요. 불자들이 잘못된 정권에 항거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들의 수십 년 믿음의 종단인 조계종 승가, 스님들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고 그 같은 잘못된 신앙을 새로운 포교운동을 통해 바로 잡고자 했던 것입니다. 1980년 직후는 그야말로 동토의 불교였습니다. 신군부의 총칼아래 얼어붙은 불교가 하루아침에 녹을 순 없었으나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임했지요. 동료들과 함께 도심포교를 전개해 불의에 저항하며 살아 숨 쉬는 파사현정의 불자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매일 강남터미널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나가 제5공화국 정권이 불교를 어떻게 탄압하였는가를 알림과 동시에 불자들의 새로운 신앙운동을 전개하며 전단지를 배포하는 등, 발로 뛰며 새로운 대중불교 운동의 깃발을 들었던 것이지요. 본 궤도에 오른 도심 불교운동은 85~90년에 절정을 이뤘고, 서울시내 100개 이상의 포교원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불교는 기복불교였습니다.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모르고 그저 소원성취만을 간구했지요. 그런데 도심 속 대중포교가 대중에게 스며들면서 불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고, 부처님 말씀이 생활 속에서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도심불교운동의 선봉에 서시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고난이야 많았지만, 그 당시에는 어려움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뛰었지요. 오직 불교를 새롭게 일구겠다는 일념으로 한 달에 50회 이상의 법회를 했고, 93년까지 서울의 12개 대학을 다니면서 포교운동을 하였지요. 때로는 민주화운동의 오해로 인하여 경찰에 구금되는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저의 열정은 결코 꺾이지 않았지요.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도심에 세워진 많은 포교원들이 불과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을 때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도심 속 대중포교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때 알았지요. 산속 수행위주의 불교가 도심의 대중 속에서 생활불교를 한다는 것이 불자들에게도 쉽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많은 스님들의 포교에 대한 노력으로 지금은 불교신앙이 생활화되고 있음을 볼 때 지난 어려움은 오늘의 기쁨이 되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언제 출가하시고 포교에 뜻을 담기까지 어떤 과정을 사셨나요?

1966년 열 일곱의 나이로 용문사에 입산 출가했습니다. 68년 수계 후 해인사 승가대학을 거치고 동국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지금은 우스개 같은 얘기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절에서는 일반대학을 가려는 학승에 대한 편견이 있었지요. 환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 때문에 사찰에 주거하기가 어려웠고 학교에 들어가서도 학비 등의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방에서 올라온 학승들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미래불교를 위한 종단의 종비교육은 종단 총무원에서 할 것을 강력히 주장, 모든 학승들의 학비를 종단에서 책임을 지는데 해결을 보았지요. 제가 학승으로 학교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었지요. 아마 그 때의 기질이 앞서 말씀드린 10.27 법난이후 도심 속의 생활불교운동으로 고스란히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읍시 칠보중고등학교 장학사업

 

작년에 있었던 불교 조계종의 내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계종을 아끼고 사랑하는 종도의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조계종이 국민들의 지탄을 받게 된 이유를 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고 싶진 않지만. 저도 종단승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이 있으니까요. 종단의 자업자득이며 종단을 운영하는 지도자 구성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종단행정의 구성원들은 소위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 내로남불하며 종단을 구성하고 좌지우지 했지요. 부처님께서는 “법이 아닌 일을 행하지 말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참회하고 새롭게 태어나라”고 말씀하셨는데, 종단 행정의 최고 구성원들은 권력을 독차지 한 채 종헌종법을 어기며 종단행정을 유린했지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결국 다수의 종도들과 불자들의 지탄과 저항을 받게 된 것이지요. 조계사태는 분명 참괴스런 사건임에 분명하지만, 잘못된 조계종의 적폐청산과 쇄신운동은 청렴한 종단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본래의 조계종 모습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승가가 바른 수행을 하지 않고 부패된다면 어떻게 대중을 바라보며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두 번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요.

 

스님께서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2010년부터 3년 동안 부패방지와 국민권리권익보호를 담당하는 국가기구인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권익위원회서 일하면서 보람도 배움도 있었습니다. 보람 있는 일이라면 카드 수수료인하, 편의점 상비약 구매 등 국민의 억울한 일들을 해소하는데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당연한 소임이었지만 임기를 마치자 권익위원회의 추천이 되어 받았습니다. 세속 일에 대해서는 그만 하는 게 좋겠습니다(하하하).

 

카자흐스탄 카작대학 총장과 함께
현진스님이 스리랑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스님께서 이사장직을 맡고 계시는 월드머시코리아라는 단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월드머시코리아는 외교부의 설립허가를 받은 NGO국제봉사기구로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있는 국내외 학생들에게 학업에 도움을 주기위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취약가정, 환우 등에게 도움의 지원과 재난구호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발도상국의 교육시설 및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지금까지 매년 베트남, 미얀마, 스리랑카 등의 해외학생 1000여명, 국내학생 9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지난 10년 동안 미얀마와 라오스, 베트남 등에 12개의 학교를 건립했습니다. 학교를 건립할 때는 부대시설인 수도나 전기시설, 위생시설 등의 제반시설까지 설치해야 합니다. 또 카자흐스탄 국립정신요양병원에 환자복지시설 ‘우정의쉼터’를 동국대 봉사단과 함께 신축했고, 카자흐스탄 카작국립대학 한국어과에 컴퓨터 등 시설물 지원 및 카작대학 한국교환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고, 네팔지진, 포항지진, 미얀마 로힝야족 구호사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월드머시코리아는 앞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외 학생들을 지원해 그들의 꿈을 이루는데 정성을 다할 것이며 재난이 있는 곳에는 국경을 넘어 도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민간외교의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월드머시코리아의 설립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종교인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닌가요? 불교의 중심사상은 생명구제의 사상입니다. 생명구제를 위해서 부처님은 일생을 길에서 고난과 고통의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하는 보살행으로 사셨지요. 오늘의 종교인이 짊어져야하는 당연한 일이지요. 사실 저는 NGO 활동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권익위의 임기가 끝날 무렵 친분이 두터운 위원회 관계자분이 저에게 평소 하는 일을 확대해 NGO 조직을 설립해보라는 제안을 주셨지요. NGO에 대한 설명에서 NGO라는 개념이 불교와 서로 상통되었기에 저는 흔쾌히 여의도포교원의 지난 10년간의 장학금, 불우이웃돕기 후원 내역을 제출했지요. 후원 기부금이 10억원을 상회 하는 등 웬만한 조직보다 좋은 일을 더 많이 했다고 하면서 불심으로 숨어서만 하지 말고 사람들을 위해 나와서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의 도움아래 해인사 동기들과 스님들, 포교원 신도님들의 협력과 후원으로 “외교부산하 사단법인 월드머시코리아”를 설립하게 되었지요. 

 

작년에는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월드머시코리아에 기금을 기탁해 화제를 모았지요?

네 그렇습니다. 작년에 수지씨가 저희 단체에 빈곤국 교육환경지원사업 기금 2천만원을 기탁했습니다. 알고 보니 수지씨의 친삼촌이 송광사의 스님이시더군요. 스님께서 저희 정기총회에 직접 참석해 수지씨의 기탁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수지씨가 국제구호사업에도 관심을 가져줘서 참 고마웠습니다. 또한 수지씨 덕분에 한 번도 홍보한적 없는 저희 단체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에 대한 포교활동에도 많은 관심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어린이들을 참 좋아합니다. 어린이들을 보면 안아주고 싶고, 뭐든 주고 싶지요. 저는 새싹부터 건강하게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1990년대 초에 280명 정원인 어린이집을 12년간 운영한 바 있고, 또한 10년간 시립 어린이집 2개소와 영아원 한곳을 운영했습니다. 현재는 어린이집 4개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린이들이 500명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소이가 있는데 어린이는 너무도 아름다운 나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이와 함께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또한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중·고·대학 학생들을 위한 법회를 포교원 개원이후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 달에 한번 법회를 보고 있는데 모두가 아이들의 인격도야를 위해서입니다. 학생들 또한 나의 가장 사랑스런 법우들이기 때문입니다.

 

현진스님이 송파위례 어린이집 개원식에서 박춘희 당시 송파구청장(가운데) 등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대갈등, 남녀갈등 등 사회갈등이 심각합니다. 이 갈등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면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직은 조직대로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개인은 개인대로 너라는 다른 것을 이해하지 않고 품지 못하고 소통이 없는 자기중심적으로만 살아가는 것으로부터 집단적 사회갈등, 세대갈등, 개인갈등 등 모든 갈등이 야기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갈등의 뿌리는 “나” 라는 것이지요. “너와나”라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중심주의가 철저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오직 “나”라는 개인중심주의가 타파되지 않고 카르텔의 집단이 타파되지 않는다면 갈등의 치유는 불가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하나라는 공동체를 이룰 때 여러 갈등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보살행인데 보살행의 실천은 자기자신을 바치는 자비희생을 말합니다.
우리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바치는 희생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천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의 자기를 바치는 보살행의 실천이 있을 때 미움과 원한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집단사회의 다양한 갈등들은 치유되리라 믿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욕망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욕심은 고통과 괴로움의 씨앗으로 본래의 신성한 생명을 헤치고 탐욕을 불러오고 사람을 물질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물질의 노예는 제아무리 억만 장자라 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노예가 되지 말고 본래의 거룩한 생명의 모습을 지닌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살라고 붓다는 말씀하십니다. “욕망에 갇힌 나와, 청정한 나”는 인생의 행. 불행의 갈림길입니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려면 욕망에 물든 나를 버려야 합니다. 탐욕의 나를 버릴 때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은 사라지고 평화가 도래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렇다고 경제를 무시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부처님은 경제관을 뚜렷이 밝히셨습니다. “수입의 1/3은 내가 먹고 사는데 쓰고, 1/3은 미래를 대비하고, 1/3은 남을 위해 쓰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작금의 시대에도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이기와 교만, 탐욕은 불행과 파멸의 씨앗임을 우리가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갈등 없는 건강한 우리네 살림살이를 위하여...
   

신환철 기자  bodo@n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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