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같은 자화상의 비밀

렘브란트(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 1606~69)는 17세기에 네덜란드가 배출한 최대의 화가이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유럽 회화 역사상 가장 큰 화가였다. 라이덴의 방앗간 집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라틴어학교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수개월만에 화가가 되려고 퇴학했다. 처음에는 외과의사조합의 주문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호평을 받기 시작하여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주로 성서·신화에서 취재한 작품 외에 역사화·풍경화·풍속화 등 모든 방면에 걸쳐서 유화(油畵)·수채화·동판화·동판화·데생의 부문에서 출중하였고, 작품수는 무려 2천점 이상이나 된다. 그의 종교화엔 독특한 수법이 쓰여졌고, 매우 장엄한 효과를 올린 걸작이 많다. 작풍은 대상에 대해선 사실적이지만, 빛의 효과에 대해서는 최대의 인상주의자였고, 색채 및 명암의 대조를 강조함으로써 의도하는 회화적 효과를 올리는데 발군의 특색이 있다.

또 그는 북유럽 동판화의 대가로서 약 300점의 걸작도 남겼다. 주요작품으로 ‘야경(夜警)’, ‘자화상’, ‘성가족’, ‘에마오의 그리스도’, ‘십자가 강하’와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 등이 있다.

동판(銅板)은 구리 조각의 평면 위에 그림과 글씨를 새긴 인쇄 원판을 말한다. 활판이나 석판에 대하여 판종명(版種名)으로 옛날부터 사용되었으나 현재도 조각요판(彫刻凹版)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동판의 기원은 소위 유럽식의 활판과 같이 15세기 중엽에 이탈리아에서 발견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1455년 작품인 ‘태형(笞刑)’이라고 하는 동판이 이탈리아에서 나오기 전에 벌써 독일에는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말기부터 약2세기에 걸쳐 서적의 삽화로서 사용되었다. 18세기 말에 석판이 발명됨에 따라 급격히 그 사용은 쇠퇴하게 되었다.

동판화(銅版畵)는 판화의 하나이다. 잉크가 묻는 요부(凹部)를 제판할 때는 조각도로 직접 조각하는 방법과 약제의 부식력(腐蝕力)을 이용하는 방법의 두 종류가 있으며 전자에는 조각철판, 요판(凹版) 조각법으로 알려진 드라이포인트(dry point) 요판화와 명암의 해조(解調: 잘 조화됨)에 주력하는 동판술인 메조틴트기법(mezzotint)이 있다.  

후자의 대표는 에칭(etching:부각법) 등 안에 방식성(防蝕性)의 납질피막면(蠟質皮膜面)을 만들어 그 위에서 철필로 그려서 노정(露呈)한 동의 부분을 초색액으로 부식한다. 에칭이 선을 강조하는데 대해 면으로 표현하는 것이 식각요판(蝕刻凹版)의 일종인 아크와틴트(aquatint)이다.

틴트(tint)는 동판화·목판화에서 농담(濃淡)을 표현하는 기법의 하나이다. 동판화는 15~16세기경부터 목판과 더불어 성행하여 독일의 화가 뒤러스와 독일의 동판화가 쇼가워 등이 우수한 작품을 남겼다. 현대에 와서는 에스파냐의 화가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 샤갈(Marc Chagall; 1887~1985) 등이 많이 제작하였다.

렘브란트는 바로크적인 구도와 명암 표현으로 인간의 깊은 정신성을 표현했다. 특히, 빛과 그림자의 정신성을 표현했다.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배합에 뛰어났으며, 초상화, 종교화, 풍경화 등에 우수한 많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자화상(自畵像)은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말한다. 자화상의 출현은 15세기 즉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일반의 인물 묘사가 사실적으로 되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최초는 주로 종교화나 줄거리를 가진 그림의 넓은 화면의 한 모퉁이에 작자가 조심성 있게 자기의 모습을 첨가시켰었고,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이르러 예술가의 자아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작가 자신만을 대상으로 하는 독립된 자화상이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17세기에는 자화상이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으며 그들은 렘브란트, 루벤스, 반다이크, 벨라스케스 등이었다. 그 후에도 대개의 화가가 자화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유명한 것은 18~19세기 초의 멩스, 고야(Goya), 말레(Mallet) 등이다. 19세기에는 들라크르와(Delacroix), 쿠르베(Courbet), 말레 등과 19세기 후기부터 20세기 전반에는 세잔(Cezanne), 뭉크(Munk), 코코시카 등의 자화상이 유명하다. 피레체의 피티화랑은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회화의 걸작 외에 자화상의 컬렉션으로서도 유명하다.

빛의 파장영역에 있는 전자기파, 광(光)이라고도 한다. 좁은 뜻에서는 사람의 시각에 느끼는 영역, 가시광선: 파장 약 400~800nm을 가리키지만, 적외선이나 자외선, 나아가서는 단파장인 X선·r감마선을 포함하는 수도 있다. 진공속에서는 2.997926X108 m/s의 속도로 전파된다. 빛은 운동하고 있는 관측자에게도 같은 속도로 전파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소위 “마이켈슨-몰리의 실험”이다. 이런 사실에서 “상대성 이론”이 유도되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얼굴이 환한데, 반면에 주변은 어두운 것이 더러 있다. 이것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투영할 때 가장 좋은 빛의 조건이다. 빔프로젝터로 영상을 투영할 때를 상상하면 잘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렘브란트가 자기가 웃는 모습을 그린 1628년 작 자화상도 거울을 보면서 자기의 모습을 그리기에는 표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어느 광학 장치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얼굴에서 반사된 빛이 오목거울을 통하면 180도 거꾸로 된 얼굴이 된다. 거울로 투영된 영상 그대로 그렸다면 붓질이 지금과는 정반대로 위로 향해야 했을 것이다. 일단 윤곽을 그린 후에 똑바로 세운상태에서 붓질을 하여 그림을 완성시켰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15세기부터 화가들이 자화상의 그림을 그릴 때 거울과 렌즈를 썼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렘브란트와 같이 활동한 페르메이르도 마찬가지로 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의 대표작은 ‘음악 수업’, ‘천문학자’ 그리고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등이다. 그때도 이미 융합(conversion)이 있었다. 이른바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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