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전진호 시인

 

어떻게 발을 들여 놓았는지 알 수 없다

거대한 어둠이 둘러싼 것 같은 동공

끝없는 길이 오징어 빨판처럼

흡착된 추억을 휘감았다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추위와 배고픔이 뒤엉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뭔가 쫓고 있던 느낌 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살면서 가끔

거부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끝없는 길을 걸어야 할 그런 때가

지금인 듯 싶다

운명처럼 거쳐야할

어둠의 시간을 감지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목이 마르고

혀끝으로 해골의 쓴 맛이 전해지는 순간

갑자기 푹 빠졌다

늪이다

진공청소기에 콩가루 빨려 들어가듯

몸부림치면 칠수록 가라앉고 있다

온 몸의 향기가 빠져나갈 즈음

뭔가 느껴졌다

뿌리나 넝쿨 같은데

흡사 생의 동아줄을 잡은 듯싶다

안간힘으로 뿌리를 쥐고

흐느적이고 있다

삶의 애착은

죽음이 덮쳐오면 꽃으로 피어 난다

어떻게 다시 빠져 나왔을까

턱 닿은 숨에 심장 소리 처져가고

이젠 몸을 가눌 수 없다

숨 쉬는 것조차 버겁다

온 몸의 세포가 거부하는지

삶의 온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무엇을 쫓아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의미 없다

그저 쉬고 싶다

생의 마지막 끈을 놓으려는 순간

문득 뒤돌아보니

희미한 불빛 아래 그대가 있었다

 

인생은 꿈속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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