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회가 회원 761명이 참여한 '전관예우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습니다. 전관예우가 실제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761명 중 91%(690명)가 '있다'고 답했고, 없다고 응답한 변호사는 9%(65명)뿐이었습니다. 이번 결과는 변호사를 상대로 조사했고, 더구나 법원이나 검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변호사들이 100명 넘게 참여한 조사에서 나왔습니다. 일반인이 아니라 변호사가 전관예우 실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어서 사뭇 충격입니다.

 

어학사전에 전관예우는 ‘고위 관직에 있었던 사람에게 퇴임 후에도 재임 때와 같은 예우를 베푸는 일’이라 설명돼 있고, 백과사전에는 ‘판사나 검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맡은 사건에 대해서 법원과 검찰에서 유리하게 판결하는 법조계의 관행적 특혜’라고 풀이돼 있습니다.

 

헌법에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하고 공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재판에는 대부분 상대방이 있습니다. 한쪽은 이기고, 다른 쪽은 집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밝히려고 온갖 증거를 찾고, 논리를 펼칩니다. 증거와 논리가 불리한데도, 그쪽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 법조계 전관예우입니다. 전관예우사건에서는 져야 하는데 이기고, 흑백이 뒤바뀌고, 거짓이 진실로 바뀝니다.

 

죽고 살고가 걸려 있는 사건이 많습니다. 재판 결과에 기업의 흥망이, 개인의 생사가 걸려 있습니다. 사건 당사자는 어떻게든 이기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불리해 보이거나,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때 내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큰돈을 들여서라도 그 사람에게 매달리고 싶습니다. 상상을 넘어서는 큰돈이 수임료란 이름으로 오갑니다.

 

제가 맡았던 사건인데, 얼마 전까지 법원장을 지냈던 사람이 떡하니 대리인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과가 예측되던 사건이어서 별 걱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전관이 나타남으로써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만약 결과가 엉뚱하게 나온다면 그 다음 대법원에는 심리불속행제도가 있어 일사천리로 확정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맞불을 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의뢰인은 전관예우 때문에 주머니를 더 털렸습니다.

 

이길 사건은 이기고, 질 사건은 지게 재판하는 것이 사회 정의입니다. 법원은 전관이라고 해서 사건을 달리 취급하는 것은 절대 없다고 설명하겠지만, 사건 당사자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법률가인 변호사가 ‘아니다, 전관예우 있다.’고 답했습니다.

 

법조계 전관예우는, 판사나 검사로 근무하다 퇴직하고 개업한 변호사가 맡은 사건에서 현직 판검사가 전직 판검사에게 편의를 봐 주는 것입니다. 현직 판검사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것이죠. 죄를 저지른 것인데 이를 예우라고 표현하는 것도 우습습니다. 현직 판검사가 전직 판검사를 봐주려고 불공정하게 처리하는 것, 이것은 범죄입니다. 그러니 ‘전관예우’가 아니라 ‘전관범죄’라 불러야 맞습니다.

 

판검사로 근무하고, 옷을 벗으면 곧바로 변호사로 개업하여 판검사를 상대로 법률대리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내버려 두고서는 전관범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변호사법에서 퇴직할 때의 근무지에서 1년 동안 사건을 수임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는 있으나마나 한 조항인가 봅니다. 일정 기간 이상, 일정 직위 이상 판검사로 근무한 사람은 변호사 개업할 수 없어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인을 상대로 여론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법기관의 신뢰도가 가장 밑바닥입니다. 주범은 ‘전관범죄’일 테지요. 사법 신뢰도를 끌어올릴 방안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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