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인 지난 14일에 나간 박상도 아나운서의 글 <강용석의 변신은 무죄?> ‘사태’에 아직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글을 쓴 본인은 예상을 했는지 몰라도 한 공간에서 함께 글을 쓰는 필자이자, 동시에 독자로서 그의 글이 이런 파장을 일으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강용석 씨로서야 당황스럽고 창피할 수도 있겠지만 글의 논지는 강씨 개인의 행태뿐 아니라 그에게 방석을 깔아주고 장단을 맞춰 준 미디어 환경 등, 다초점을 향하고 있었음에도 이런 류의 반향이 나온 것은 뜻밖이었습니다.

 

글이 나가자 자유칼럼그룹 홈페이지에 곧 험악한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강씨의 ‘아나운서 발언’을 겨냥한 왜곡된 궤변이며, 졸렬, 치졸하기 짝이 없는 보복성 글이라는 둥, 강용석의 인기에 배가 아파진 박상도가 자신도 ‘뜨고’ 싶어서 고상하게 위선을 떤다는 둥 엉뚱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발 없는 말’이 된 그의 글이 종횡무진 인터넷상을 내달리는 동안 퍼담는 매체의 입맛대로 문맥 상관없이 글의 앞 뒤가 잘리고, 퍼나르는 사람 멋대로 ‘장님의 코끼리’처럼 치우친 편집과 자극적 제목을 덧입혔습니다. 연예 가십 기사로 전락하기 직전까지 간 것입니다.

 

급기야는 변신에 성공한 강씨와 이를 질시하고 시샘하는 박씨의 대결 국면, 강씨가 나온 서울대와 박씨의 모교 연세대의 격돌이라는 어이없는 구도로 글의 본질이 희석되더니, '박쌍도'라는 욕설 섞인 호칭으로 그의 고향을 들먹이며 예의 신상털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점입가경입니다.

 

그악스런 댓글로 혼란스런 상황에 연이어 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매체들이 여론의 균형을 잡기 시작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박상도 씨가 지적한 대로 인터넷 상에서 늘상 벌어지고 있는 '침묵의 나선형'이론이 그대로 적용될 뻔했습니다.

 

‘침묵의 나선형’이란 자신의 의견이 다수의 목소리에 속해 있다면 더 큰 소리로 떠들게 되지만 소수 편에 있거나 다수의 생각과 다를 경우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 이유는 이른바 ‘왕따’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겠지요. 지배적 의견, 힘을 얻고 있는 의견이 무엇인지 주시하면서 눈치껏 자신의 의견을 감추고, 처음 가졌던 생각을 바꿔 다수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잠잠히 있으면서 침묵 나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궤적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박상도 아나운서는 자유칼럼그룹 필진의 사적 공간에서 ‘침묵의 나선형'이론을 말하며 자신의 이번 글로 인해 강용석 씨의 무렴한 행태에 침묵해 왔던 소수가 실은 다수였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설마 그럴까마는 좋게나 나쁘게나, 손가락질을 당하고 원색적 욕을 먹는다 해도 이름이 알려질 수만 있다면 그 자체를 즐기고 반기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가대로라면 강용석 씨로서야 박상도 씨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지 모릅니다. 저만 해도 강씨에 대해 이번에 좀 더 알게 되었으니까요.

 

홍보전략 중에 ‘Any publicity is good publicity’ (어떻게든 알려지는 것, 즉 나쁘게라도 알려지는 것이 안 알려지는 것보다 낫다) 라는 말도 있고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박상도 씨는 본인의 글에서 인용한 앤디 워홀 (Andy Warhol)의 말 그대로 15분 만에 유명해져 버렸습니다. ‘박상도 아나운서’가 한때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르고 덩달아 ‘자유칼럼그룹’이 동반 검색어로 창에 뜰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론 혼탁한 한국 사회에 모처럼 정의로운 공론의 단초가 될 울림 있는 글로 느꺼워진 마음이 난데없는 소란으로 헤식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강-박 대결'로 난리법석을 떠느라 ‘강씨 같은 사람’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토양을 북돋워 준 ‘강시(屍) 같은 방송’에 대해, 한갓 장삿속에 젖은 천박한 언론 풍토에 대해, 양과 질을 혼동하며 줏대없이 휩쓸리는 매체의 속성에 대해 책임있는 논쟁을 시도해 볼 기회가 사그라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무엇보다 박씨의 글을 통해 언론계 스스로가 대중의 올바른 판단과 건전한 여론을 주도해야 할 본연의 사명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거늘 누리꾼들의 엉뚱한 충동질 뒤에 슬쩍 숨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입니다.

 

더구나 박상도 씨는 외부 비판자가 아닌, 방송사라는 언론계의 핵심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글을 쓰는 데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뜻이 헛되게 묻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박상도 씨,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기왕지사 강용석 씨와 ‘맞장 뜰’ 정도로 유명해졌으니 지금껏그래왔듯이 꿋꿋하게 바른 말을 하고 불의를 참지 않는 양식있는 언론인의 참모습을 지켜 나가길 바랍니다.

 

아울러 “상도에는 상도(商道) 말고도 상도(‘常道- 항상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 변하지 않는 도리) 가 있다.”는 말로 박상도 씨를 인정한 자유칼럼그룹의 어느 언론 대선배의 격려도 잊지 마시길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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