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노인네가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이나 동작을 갑자기 하게 되면, 그의 건강상태에 이상이 오는 징조라고 했습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평소의 습관에 생각지도 않은 변화가 생기면 그 사람의 정신 상태에 이상이 오기 시작한 거라 본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번에 오래된, 판에 박은 듯한 생활 습관에 갑자기 변화가 감지되어 혼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 잠깐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날 하루에 당황스러운 일이 연달아 일어난 것입니다.

 새 천년이 시작되고 제 나이도 70줄 후반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청탁을 받아 조금씩 계속하던 영문 기사 작성이나 번역 일을 거의 중지하고, 오로지 노후 건강관리와 취미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과로 생활 패턴을 바꾸었습니다. 그동안 별 탈 없이 벌써 10여 년이 흘러갔습니다.

 계절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으나, 대체로 아침 6시 전후에 기침하여 하루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우선 침상에서 지압, 마사지, 스트레칭, 단전호흡, 명상 등을 연결한 자기류(自己流) 건강 체조를 약 한 시간 계속합니다. 그런 다음에 혈압조절 약을 먹고 서재로 이동하여, 그날 예정표, 인터넷 메일 및 뉴스 점검 등을 합니다.

 그리고 4층에 있는 저의 집에서 계단을 통해 현관에 내려가, 구독하는 두 가지 신문을 챙기고, 8시경부터 아침식사를 시작합니다. 매일 보는 두 개의 텔레비전 정기 프로가 끝나는 9시 30분까지, 아내와 함께 커피를 곁들인 채식 위주의 식사를 천천히 합니다.

 그런데 이상이 감지된 지난 21일은,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래층에 가서 신문을 챙겨오는 중요한 일과 하나를 까마득하게 잊었습니다. 처음 경험한 일이었습니다. 식사 전에 신문을 대충 훑어보고 마누라가 필요로 하는 방송순서가 들어 있는 지면을 따로 뽑아 거실에 갖다놓는 것도 오래 계속해 온 순서입니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탁상 달력의 예정표 점검 때였습니다. 이날 두 친구와 약속된 식사 시간을 확인하려고 달력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침식사 전에 보건소에 가 정기 혈액검사를 받아야 하는 날임을 뒤늦게 발견한 것입니다.

 고혈압 증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보건소에는 3개월에 한 번씩만 갑니다. 그러나 약을 타는 일주일 전에 혈액검사를 받아, 보건의의 설명을 듣고 약 조제의 변경 여부를 검토해야 합니다. 이 검사에는 그 전날 밤 10시 이후 물을 포함한 금식(禁食)이 필요합니다. 이를 깜빡 잊었던 것입니다. 마침 그날이 금요일이라 검사는 월요일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저녁으로 알고 있는 약속 시간이 달력에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이를 찾기 위해 옛날 메일을 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참 만에 원 메일을 찾기는 했으나 시간은 적혀 있지 않아, 7시로 기억하고 있으니 좀 기다릴 생각으로 일찍 나가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12시 뉴스를 들으며 소파에서 ‘수독’(數獨) 퍼즐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좀 까다로운 문제여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데, 마누라가 전화를 바꾸어주었습니다. “아니, 아직 출발 안 했어?”라고 다그치는 목소리 주인공은 오늘 만나게 되어 있는 전 연합통신 사장 조용중 씨 목소리였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바짝 들어 “아 지금 곧 출발해요. 15분이면 도착할 테니...”라고 말끝을 흐리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저녁이 아니고 점심 약속이었다는 것이 비로소 생각났습니다. 허둥지둥 나간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탄다고 조 형에 연락을 하려는데 휴대전화 배터리마저 나가 있었습니다.

 "아니 언제 우리가 밤에 만난 적이 있어?”하는 조 형 소리를 듣고 생각하니, 작년 후반까지 매달 정례적으로 만나던 시간도 예외 없이 12시 30분이었습니다. 이번에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한 것에서 착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동기의 점심 모임을 빼고, 인사동에서 만나는 것은 언론계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이 보통이었던 것입니다.

 이날 모임은 코리아 타임스 주필을 지낸 홍순일 형의 주선으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지금 워싱턴에 거주하는 진철수 형의 출판기념회가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지난 4월의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부인과 작고한 옛 친구들을 회고하는 자리에 홍 형을 비롯한 옛 친구 몇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회를 본 조 형은 집이 먼 관계로 만찬회 전에 귀가했습니다. “그래요, 김인호 정인양 조세형 다 가고, 이젠 날 ‘KC’라고 불러줄 친한 친구는 몇 안 남았어요.”하고 제가 푸념했습니다. AP 시절 기명(記名)기사에서 사용한 영자 이름 K.C. Hwang을 줄여 'KC'로 다정하게 불러주는 친구는 이제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홍 형이 ‘KC'라고 부르는 친구끼리 만나자고 했다"는 메일을 조 형이 보내 온 것이 이달 초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공식 석상 말고 차나 식사 자리를 가진 것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 기억되었습니다.

 식사 후 근처 다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계속된 잡담의 주요 화두는 역시 건강이었습니다. 치매로 작고한 친구, 그리고 오랜 요양생활로 고생하는 분 이야기가 주였습니다. 발가락에 생긴 티눈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한다는 조 형이 자리를 뜨며, 다음에는 꼭 약속 시간까지 통지해 주겠다고 웃으며 다짐했습니다.

 사흘 뒤, 혈액검사 준비를 차질 없이 하고 아침 식사 전에 보건소에 출두했습니다만, 차마 며칠 전에 있었던 웃지 못할 ‘사고’이야기는 꺼내지 못 했습니다. 다만 얼마 전 아내 친구가 간절히 권유한 치매 검사는, 곧 있을 마누라 백내장 수술이 끝나는 대로 꼭 받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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