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병(遺傳病)이란 생명 현상을 주도하는 유전자나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염색체에 이상에 생겨 나타나는 질환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러한 유전병은 유전자인 DNA가 복제될 때 생기는 변이에 의해 발생할 수 있고, 우리가 생활하면서 접하는 여러 가지 화학물질이나 환경 요인들에 의해서 발생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들은 유전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요?

 

 생명의 본질로 불리는 ‘유전자(遺傳子, DNA)’는 우리의 모습이나 성격, 질병에 대한 민감성에는 물론 수명에 이르기까지 생명 현상 전반에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기술인 유전자를 조작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유전 현상을 조절하려는 시도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병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사람의 유전자 수는 약 2만 5천개에서 3만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현재까지 밝혀진 유전병 외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유전병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줍니다.

 

 당뇨병, 비만, 심장병, 동맥경화, 위암이나 간암과 같은 많은 질병들은 물론 전염병에 대한 민감성, 대머리의 탈모, 음식물이나 꽃가루 등에 대한 과민반응(알러지) 등의 발현에 유전자가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병들에 대한 유전자의 영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 실례로 이자(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의 장애로 나타나는 당뇨병은 유전성이 높은 질병입니다. 당뇨병의 발생에 대한 유전적 조사에서 그 발생률이 부모 모두가 당뇨인 경우 자녀의 58%, 부모 중 한 사람이 당뇨인 경우는 자녀의 27%, 그리고 부모가 모두 정상일 경우에는 자녀 중 0.87%로 나타났습니다. 당뇨병은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병하기는 하지만 유전적 소인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 당뇨병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당뇨병이 질환 자체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당뇨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 유전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당뇨병의 발생에는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지만 생활 습관이나 환경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당뇨병의 원인을 잘 조절할 경우 병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당뇨병을 유발하는 비유전적인 발병인자로는 비만, 바이러스 감염, 임신, 노화, 정신적인 스트레스, 약물복용 등을 들 수 있는데, 그중에서 비만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이 국민 건강을 위하여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만의 유전성은 어느 정도 되는 것일까요. 비만은 주로 식생활이나 생활 습관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유전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연구팀에 의해 새로운 비만 유전자가 발견되었는데, 연구팀은 당뇨환자 779명과 정상인 3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특정한 유전자(TGFBI)가 비만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만성질환인 당뇨병과 비만의 유전적 소인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물론 유전 진단, 개인별 맞춤의약 개발 등에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암의 발생에 대한 유전적 영향은 어떠할까요. 지금까지 유방암, 전립선암, 결장암 등의 발생에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췌장암은 발병 원인 중 5~10%가 가족 내 유전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흡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육류 등 고칼로리나 콜레스테롤 함량이 많은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암의 발생 조사에서 암 환자의 직계가족 20%에서 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암에 대한 감수성이 자손에게 유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정 암이 한 가족 내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 유전성 암 증후군들도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거리인 대머리의 유전성은 어떠할까요. 어머니가 대머리인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대머리 유전의 가능성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대머리일 때 높게 나타납니다. 20세 남성의 경우 아버지나 외할아버지가 대머리가 아닐 때 탈모의 발생 확률은 10% 정도이지만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대머리이면 그 확률이 35%로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대머리를 유발하는 유전자는 우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대머리의 성향이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한 유전자가 특정한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대머리의 경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인들로는 호르몬과 나이 그리고 스트레스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유전성 질환들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일까요. 그 답은 ‘아니요!’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많은 유전성 질환이 그 자체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질환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 유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뇨병, 암, 비만, 대머리와 같은 유전적 소인에 따른 질환의 경우 비유전적 요인인 생활 습관이나 주변 환경을 잘 조절할 경우 병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제 건강한 미래의 삶을 위해 평소 자신의 그릇된 생활 습관이나 주위 환경을 잘 살펴볼 것을 제안해 봅니다. 유전병에 대한 대응은 발생한 다음에 치료하는 것보다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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