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과 재 - 양여천 시인

 

꽃은 재가 되어 버렸다
안으려고 하면 부서져 버린다
아비규환의 상처투성이 봄이
귀환하던 그 어느 햇살속에
꽃은 잠시 방긋 웃더니
내 손끝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내 사라져 버렸다
차라리 봄은 오지 말았어야 했다
봄을 느낀 순간부터가 비극이다
햇살에 닿아 불타오르던 나무가
꽃을 벗어 던지고 하늘을 보는 순간
꽃은 재가 되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불꽃은 재가 되어 버렸다
눈앞에 아직 꽃은 잔상으로 피어 있는데
그 자리에 일렁이던 향기만 남았다

바람은 그렇게 쉽게 앗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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