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짐 / 양여천 시인

 

종이위에 물감이 번져가듯
내 가슴위에 나의 감정이 번져갑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꽃보다 더 어여뻐라

때론 종이위에 불꽃이 살라먹듯
내 가슴에서 나의 열정이 이글거립니다

꽃보다 더 아리따운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꽃은 그림자를 그려둔 채 날개처럼 펄럭이고
색색으로 물들었던 종이위에 먹은 바래어지는데

당신은 어느 순간 꽃의 무게를 잊었고
나는 사랑의 시름을 잊었습니다.

때론 불꽃의 재들처럼 꽃들은 가벼이 날개치며 떨어지고
부채살을 그리며 밤공기속에 흩어져 있던 불빛은 젖은 땅에 부서집니다

종이도 꽃도 눈물에 젖고 눈물젖은 눈동자에서는
세상이 젖어 보입니다, 젖은 세상은 온통 안개꽃 투성입니다

눈이 먼 내 감정은 손바닥 위에 눈물로
종이위에 색을 들이며 번져갑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픔과 기쁨까지 전부

때론 불꽃이 종이의 빈 몸을 살라먹듯
슬픔이 영혼을 잠식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는 불꽃처럼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별과 그림자가 얼굴을 물들이는
밤과 낮의 시간에도 그대의 얼굴에
꽃의 그림자 새기며

영원히 같은 숨결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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