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갤러리 팔조에서 2025년 3월 13일부터 4월 12일까지 작가 채온의 'Guardian Angel(수호천사)' 전시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기억된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된 독창적인 화법을 통해,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채온 작가는 인물, 풍경, 정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자신의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 경험들은 작가가 선택한 기억에 기초하며, 그 선택은 오직 작가에게 달려 있다. 작가는 경험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기억하며, 이를 재현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체화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직관적이고 본능적이며, 회화에 대한 깊은 욕망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림은 작가에게 억압으로부터의 분출이자 해방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채온은 "회화란 화면 위에 물감이 뒤섞여 흘러내리는 과정일 수 있지만, 그것은 바로 화가의 몸이며, 그 자체가 회화"라고 말하며, 회화를 단순한 창작 도구가 아닌 사유와 소통의 수단으로 인식한다. 그녀는 회화 그 자체로 자신의 존재와 표현을 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 채온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그 결과물이 '수호천사'와 같은 존재임을 이야기하며,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따뜻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Guardian Angel' 전시는 관객에게 작가의 내면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회화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이끌어낼 것이다.
작가의 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힘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이 말과 글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것들, 회화를 회화하고 싶었다. 최근작들은 설명할 수 없는 기운에 의해 온전히 나를, 캔버스에 당시의 상황을 맡기는 것이라 하고 싶다. 계속적으로 “왜”라는 어떤 합당하고 타당한 근거를 찾지 않았다. 오로지 그리는 것에 대한 기쁨으로 붓에 물감을 묻히고 기름칠을 하고 쭉쭉 그어대며 순식간에 나온 그림을 좋아한다. 이렇게 순간적이고 재빠르게 그려낸 흔적은 무언가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은 내가 가장 자세히 보고 싶은 무언가라 생각했다. 작품 ‘Deer’, ‘강한사람’, ‘Ghost’, ‘세 개의 산’, ‘Illusion’, ‘정상’등은 이렇게 그려졌다.
2019년은 밤에 대한 것들을 그렸다. 2020년 지금의 작업도 밤에 대한 개념은 지속중이다. 어둑해지는 밤에 나타나고 꿈틀대는 것들이 있다. 작품 ‘환영하는 밤’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최근에 빛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서 별의 반짝임도,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의 불빛도, 가로등 주황색의 환함도 크게 마음에 자리 잡았다. 공단 근처 굴뚝의 연기들은 하늘위로 솟아오르며 사라지는 장면은 장관이었고, 어떤 야경의 불빛들은 촘촘히 또 산발적으로 허공에 떠 있거나 바닥에 내려앉아 있었다. 인공의 것들조차도 너무 선명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고 그런 환영(幻影)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환영(幻影)되는 것들과, 눈에 보이고 빛나는 선명함 들을 캔버스에 그려내고 싶었다. 빠른 붓질로 어떤 부분을 꾹 하고 찍어내고 빈 여백의 부분들을 메워나갔다. 물감의 얼룩들은 그런 선명함의 자국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며 서로 뒤섞여 희미해진 삶에서 빛나는 것을 찾아내고 발견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어둑한 밤들을 관찰한다. 그렇게 환영(幻影)되는 그런 밤을 환영(歡迎)한다. 이렇게 기술하였으며 계속적인 지금의 모습을 확인하고, 작업을 하려고 한다.
나는 그리는 것이 좋고 그림이 좋았다. 또 창작의지와 존재하는 자유로움이 있기에 화가가 되었다. 캔버스를 만들고, 물감을 짜고 바르며 그림의 완성이 되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결정을 내리며 그림의 주인공이 된다. 그림으로 그려진 나의 이야기에 삶을 증명하고 확인받기를 원한다. 그런 나는 에너지가 넘치고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경험한 것은 기억된다. 그것은 환상적인 현실성으로 드러난다. 나는 두려움을 버리고, 용감하고 싶다. 진실과 거짓으로 뒤섞인 이야기는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붓질을 할 때 차분해지고, 조급해지고를 반복한다. 그 결과물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대상이 된다. 나는 묵묵히 두려움을 용기로 마주해야 한다. 회화는 삶의 방식이며 삶 자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