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물범, 용틀임바위, 콩돌해안 등 발길 닿은 곳마다 절경
‘인천i-바다패스’로 인천시민은 버스요금, 타시민도 70% 할인
눈부시도록 청명한 하늘과 뽀송한 바람, 황금빛 들판과 끝없이 펼쳐진 가을 들판의 코스모스.
하늘은 높기만 하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 독서와 운동, 그리고 여행 등등. 이 계절엔 뭘 해도 안성맞춤인 계절이 가을이다.
그중에서도 굳이 하나만 꼽는다면 단연 트레킹을 추천한다, 온몸으로 가을을 맞을 수 있고 걸으면서 명상을 하기에도 그만이다. 건강에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편안한 차림으로 동네 한 바퀴, 마을 뒷산을 가볍게 걷는 것도 좋지만 아웃 도어를 입고 물과 간식을 챙겨 넣은 작은 배낭을 걸머진다면 어디라도 갈 곳이 없으랴.
여기서 잠깐! 트래킹에 여행을 혼유시킨다면 가을날의 힐링을 더 깊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렇다면 여행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좋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나의 일상공간에서 멀리 떨어진다면 심리적인 해방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굳이 오지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유이다.
서해 최북단에 있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는 쾌속선을 타고 3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육지에서 약 200km 떨어진 곳이다. 그렇지만 승선요금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과거엔 배값이 제주도 가는 비행기값과 비슷했으로 올 초 ‘인천i-바다패스’ 제도가 시행되면서 인천시민들이라면 버스요금(편도 1500원)으로 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섬에서 1박 이상을 한다면 요금의 70프로를 감면받을 수 있다.
제주도에 올래길이 있다면 백령도엔 ‘흰나래길’과 ‘평화둘레길’이 있다.
옹진군은 지금 백령도를 포함해 서해5도에 안보와 관광자원을 연계한 ‘백령평화둘레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백령도 35.6km, 대청도 12.4km, 소청도 4.5km, 연평도 10.9km, 소연평도 3.3km 등 총길이 66.7km의 둘레길을 오는 2029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옹진군은 앞서 백령도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섬을 일주할 수 있는 ‘백령흰나래길’을 조성한 바 있다. ‘흰나래’는 백령도의 환경과 생태, 생활문화를 체험하며 사랑과 평화의 염원을 하얀 새의 날갯짓에 실어 보낸다는 의미의 트레킹코스이다.
백령·대청도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천혜의 환경생태섬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을 앞두고 있는 청정섬이기도 하다.
그냥 보내기엔 너무도 아까운 계절. 이 가을 백령도 흰나래길을 따라 걸어보자.
# 용기포 맞이길
- 선착장에서부터 기암괴석이 환영, 실향민들 만들어먹은 냉면 백령도 대표 음식으로
인천연안부두에서 오전 쾌속선 ‘코리아프라이드’호를 타면 점심 때쯤 용기포항 선착장에 도착한다. 신용기포항에 도착하면 억겁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퇴적층이 범상치 않은 섬임을 보여준다.
섬과 육지를 오고가는 주민들과 군인들이 뒤섞여 왁자지껄한 용기포항을 출발해 백령로사거리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두 개의 돌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통일을 염원하는 소망을 돌 하나하나에 담아 정성으로 쌓아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넓고 푸른 서해와 백령도를 지키면서 동시에 풍요로운 삶을 위해 화합, 단결하고 노력하는 섬 주민의 염원을 담아 쌓아 올렸다고 전해진다.
조금 더 걸어 용기포 구선착장 방향으로 가면 바다 건너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는 통일기원탑을 만난다. 백령도는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대치하며 75년간 분단의 세월을 살아온 섬이다. 위도상으로는 북한 땅보다 위쪽에 위치하며 불과 10여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백령도와 북한 땅 장산곶 사이엔 남북이 오갈 수 없는 침묵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NLL(북방한계선)은 1953년 정전협정과 함께 UN사령관이 설정한 남북 간 해양경계선이다. 남북이 각각 2km씩 4km로 이뤄진 경계선 안에선 중국어선들이 불법조업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도 하다. 남북의 어민이 들어갈 수 없는 구역에서 중국어선들이 판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백령도엔 인민군을 피해 많은 북쪽 사람들이 백령도로 건너왔다.
“내 금세 돌아오리다” 배에 오르며 부모와 처자식에게 남긴 그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이야. 한국전쟁 당시 함경남도 사람들이 속초로 내려와 정착하기 시작했다. 속초 아바이마을이 바로 함경도 사람들이 정착해 터를 일군 동네이다.
속초에 정착한 함경도 사람들은 수구초심의 마음을 음식에 녹여냈다. 고향에서 만들어 먹던 냉면과 순대를 먹으며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달랜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최북단 서해 백령도엔 황해도 사람들이 많이 건너왔다. 그들 역시 고향이 그리울 때면 메밀을 키워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그게 바로 백령냉면의 대표브랜드인 ‘사곶냉면’이다. 시간이 흐르며 녹두부침개, 짠지떡, 돼지고기수육과 함께 백령냉면, 사곶냉면은 식도락가들이 즐기는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돌탑에서 바라보면 마을 뒷산 언덕 너머로 썰물 때만 갈 수 있는 해식동굴이 보인다. 해식동굴까지 보았다면 백령도 ‘끝섬전망대’로 걸어 올라가본다.
끝섬전망대에선 사곶해변과 백령공항이 들어설 담수호 등 부지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 점박이 물범길
-천진난만한 눈망울, 하늬해변에 천연기념물 점박이물범 350여마리 서식
끝섬전망대에서 맑은 산소가 뿜뿜 뿜어나오는 피톤치드 소나무 숲길을 지나 하늬해변에 이르는 길이다.
끝섬전망대에서 잘 내려다 보이는 사곶해변은 길이 2km,폭 200여m의 천연비행장이다. 한국전쟁당시 B-29나 C-4와 같은 수송기의 이착륙이 가능할 정도로 모래가 곱고 단단했다. 지금도 눈으로 보기엔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사곶해변 바로 아래 담수호는 오는 2030년 백령공항이 들어설 자리다.
“다른 곳으로 이사가지 않고 백령도에는 살아주기만 해도 애국자이다.” 백령공항은 서해 최북단에 살아가는 주민들의 정주여건 개선과 1일 생활권 보장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2010년부터 추진해온 대역사이다. 백령도는 여러모로 아름다운 섬이지만 육지와 많이 떨어져 있어 교통과 의료가 열악한 지역이다.
백령공항 조성은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하고 야간운항 통제와 기상악화로 결항하거나 지연운항을 보완하기 위해 계획된 사업이다. 백령공항 예정부지는 잔잔한 호수로 출렁이고 그 주변엔 광활한 꽃밭과 양묘장이 조성된 상태다. 공항이 들어서기 전 가을의 꽃밭을 구경하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백령도의 대표적 아이콘 가운데 하나가 점박이물범이다. 하늬해변엔 약 350여 마리의 점박이물범이 서식하고 있다. 점박이물범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1급으로 지정된 국제적 희귀종이다. 하늬해변에선 물이 빠지면 바위 위에 올라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맞으며 V자 콧구멍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점박이물범들을 볼 수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제공하는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며 가까이서 보려면 유람선을 타고 나가면 된다.
인천시는 점박이물범을 활용한 마스코트 버미, 꼬미, 애이니를 제작해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옹진군 또한 올 초 K-관광섬 백령도 홍보마케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물범 캐릭터인 ‘씰룩’을 활용한 백령도 관광 홍보에 팔을 걷어부쳤다. 씰룩은 더핑크퐁컴퍼니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밀리언볼트가 제작한 국내 최초 과몰입 3D 애니메이션으로 유튜브 구독자 893만명을 보유한 물범 캐릭터이다.
점박이물범들이 유유히 헤엄을 치는 하늬해변과 진촌마을은 얼마 전 환경부가 주관한 ‘국가생태관광지역’ 운영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재지정되기도 했다. 옹진군은 현재 백령생태관광체험센터 조성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에 개관하면 환경생태공부도 할 수 있다.
# 심청마을길
심청이 몸 던진 인당수, 연꽃타고 도착한 연봉바위, 연화리 등 심청 흔적 곳곳에
하늬해변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심청이의 전설을 만난다. 심청마을길은 끝섬전망대를 출발해 동키부대 막사와 우물-백령면사무소를 거쳐 심청각에 이르는 길이다.
백령도는 앞을 못 보는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딸 심청이가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심청전’의 설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인당수는 백령도와 북한땅 장사곶 사이에 위치한 바다이다. 지금은 서해북방한계선(NLL)로 막혀 있어 인당수는 심청각에서만 바라볼 수 있다.
백령도엔 심청이 바다에 빠졌다가 회생해 연꽃을 타고 조류에 떠밀려 닿은 백령도 남쪽 해안 작은 바위섬 연봉바위가 있다. 연화리란 마을이름도 심청이의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심청각은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진촌리 북산 정상에 위치한다. 1999년 문을 연 심청각 1층에선 글과 영상, 소설, 동화, 국악으로 표현한 심청전을 만날 수 있으며 2층에선 백령섬에 대한 일반적 설명을 접할 수 있다. 심청각 앞엔 치마폭으로 얼굴을 감싸고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만 같은 심청이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동상이 오롯이 서 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심청각에서 만나는 반딧불이도 신기하게 다가온다. 시나브로 날이 어두워질 때면 심청각 앞 수풀 속에서 야광색을 한 불빛들이 하나둘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반딧불이들은 하늘로 올라가 별로 환생한다. ‘나는 반딧불’이란 노래의 가사처럼 심청각에선 반딧불이가 별이 되고 별이 반딧불이가 되어 별똥별로 떨어진다. 하늘이 맑은 저녁엔 은하수를 볼 수도 있는 곳이 심청각이다.
심청이의 효심을 더 느껴보고 싶다면 심청효테마파크(백령면 관창길 397)를 찾으면 된다. 심청테마파크는 심청이의 눈물겹고 익살스러운 부녀 스토리를 재밌는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으며 맛있는 딸기쥬스를 마실 수도 있다.
백령도엔 6.25때 맹활약을 펼친 동키부대 막사가 남아 있다. 동키부대는 1951년 백령도로 피란온 황해도 출신 청년들 1000여 명으로 조직된 무장의용대였다. 동키부대 대원들은 적지에서 동조자를 규합하고 지하조직을 구축하며 첩보 수집과 태업, 적 해안선 봉쇄 등의 유격전을 전개했다. 동키부대의 활동반경은 압록강 하구에서부터 강화도 하구에 이르는 30여 개의 섬과 구월산, 멸악산 등 황해도 내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것이었다. 당나귀를 뜻하는 동키(donkey)는 미군이 지급한 무전기가 당나귀 귀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 오색콩돌길
-억겁의 세월 쓸리고 깎이어 다듬어진 형형색색의 콩돌들, 맨발걷기마니아들에게 인기
대교라고 하기엔 너무 귀여운 ‘백령대교’에서 시작해 백령공항 예정부지인 담수호를 지나 갈색염전을 거쳐 콩돌해안에 이르는 길이다.
백령도엔 과거 몇 개의 염전에서 질 좋은 천일염을 생산했으나 지금은 소금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염전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바로 ‘화동염전’이다. 화동염전은 오래전부터 까나리액젓에 쓸 소금을 생산해왔다. 바닷물을 증발시켜 결정체를 만드는 천일염 방식의 염전이었다. 화동염전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백령도의 유일한 염전이었으나 염부대표가 사망한 뒤 지금은 폐염전으로 남았다. 화동염전 터에 가면 소금창고 1개와 타일로 된 염전바닥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백령도 하면 ‘콩돌해안’을 떠올릴 정도로 콩돌해안은 잘 알려진 곳이다. 백령공항 예정부지인 담수호 아래 백령도 동남쪽에 위치한 콩돌해안은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동글동글해진 돌들로 이뤄진 해안이다. 크기뿐 아니라 빛깔까지 다양해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태양이 잘게 부스러져 해안에 쌓인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청록빛 바다를 바라보며 맨발걷기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 용틀임바위길
-국가지질명소 남포리습곡, 용틀임바위 등 신선들의 놀이터 같은 절경 따라 걷기
굴칼국수로 유명한 장촌칼국수가 있던 장촌마을입구에서 시작해 국가지질공원인 용틀임바위를 거니는 코스이다. 장촌칼국수집은 본래 장촌에 있었으나 수년 전 진촌리로 이전해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백령도에 가면 한 끼 정도 꼭 먹어봐야 할 맛이다. 메밀로 만든 면발 때문에 걸죽한 국물에 작은 굴이 곁들여져 부드럽게 넘어가고 소화도 잘 된다.
백령도는 대청도와 함께 2019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환경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현재 북한의 반대로 주춤하고 있지만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받는 절차를 한 단계 한 단계 진행 중이다. 북한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백령대청도는 내년 쯤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으로 발돋움할 예정이었다.
국가지질공원 명소 가운데 하나가 용틀임바위이다. 수억 년 동안 파도와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바다 한가운데 솟은 용틀임바위는 그 모습이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한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용틀임바위가 보이는 절벽의 오른쪽으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남포리습곡이 자리한다. 남포리습곡은 지층이 구부러지거나(습곡), 끊어진 곳(단층)이 있는데 강한 힘의 작용을 받으며 지층이 변형된 것이다. 그 밖에 백령도의 국가지질명소는 두무진, 진촌리현무암, 사곶해변, 콩돌해안 등이다.
# 중화동포구길
-우리나라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인 ‘중화동교회’. 기독교 역사 한눈에 볼 수 있어
중화동 입구에서 시작해 중화동경로당-중화동교회-백령식수원-중화담수호길-중화포구-중화동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중화동교회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 째로 세워진 장로교회다. 1832년 7월 독일 태생 유태계 선교사 귀츨라프(Karl F.Gutzlaff, 한국명 곽실렵)는 백령도에 성경을 비롯한 기독교 교리에 관한 책을 남겼다. 기독교사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한국명 최난헌) 선교사도 1865년 백령도를 방문했다. 개화사상을 가진 허득 공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소래교회 서경조 장로의 도움을 받아 백령도에 유배됐던 김성진 황학성 장지영과 함께 한학서당에 교회를 열었는데 그게 중화동교회의 시작이었다. 서경조 형제는 중화동교회 설립예배를 인도했으며 1899년 소래교회에서 건축자재를 공급받아 초가6칸 규모의 교회건물을 지었다. 중화동교회는 여전히 교회로 운영하며 일반인에게 교회를 개방하고 있다.
교회 옆에 있는 ‘백령기독교역사관’은 한국기독교 100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기념관이다. 성지순례를 하는 종교단체나 종교인들이 백령도에 오면 꼭 한 번 발걸음을 하는 곳이다. 종교의 역사가 아닌 역사로서의 종교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장소이다.
이곳에선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선교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서양의 선교사가 주민들에게 성경책을 전달하는 모습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풍경 등을 전시해 놓았다.
백령기독교역사관은 19세기 초에 시작된 백령도와 인근 섬에 대한 기독교 선교기록들을 모아 2001년 11월 개관했다. 백령도 인구의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인 것은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가장 먼저 전파된 지역이 황해도 연안 섬지방이었기 때문이다.
1816년 9월 서해를 항해하던 영국 해군 함정이 백령도 근처에 배를 정박한 뒤 기독교 선교를 담당한 클리포드 대위가 주민들에게 성경과 전도지를 전해준다. 1898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인 중화동교회의 초대 당회장은 황해도 지역의 선교를 지휘하던 언더우드목사였다. 백령기독교역사관엔 초기 중화동교회의 모습과 최초의 백령도 복음전파 장면, 서양선교사가 주민들에게 성경을 전달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언더우드 목사의 기념비와 역대 성직자들의 사진들도 볼 수 있다.
# 백령수호길
-천안함피폭 전사자 46인의 공로 기린 천안함위령탑에서 바라본 서해바다의 눈물
해병여단사령부에서 출발해 북포리 마을을 지나 소갈동 마을, 연지동을 거쳐 천안함위령비에 이르는 길이다. 백령도는 환경생태적 가치가 뛰어나지만 바다를 경계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어 군인들이 인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서해5도는 특히 연평1,2해전, 대청해전에서부터 천안함 폭침에 이르기까지 위태로운 국지전이 발발해 많은 군인들이 희생됐던 지역이다. 옹진군이 백령흰나래길을 보강해 확장조성하면서 굳이 ‘평화’라는 단어를 넣어 백령평화둘레길로 확장 조성하려는 이유다.
“콰-광”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저녁식사를 한 뒤 차를 마시며 티비를 시청하던 백령도 사람들이 황급히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주민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의 진원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얼마 뒤 뉴스속보가 떴고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포항급 초계함 14번함인 ‘천안함’이 북방한계선(NLL) 해상 초계임무 수행 도중 북한의 포격을 받아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피격 이후 인근 지역에서 경계작전 중이던 속초함과 백령도 등지의 참수리급 고속정, 해양경찰청 함정에 의해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됐으나 46명은 전사했다.
이후 수색작전 중 3월 30일 해군특수전여단 한주호 준위가 감압병으로 순직했고 4월 3일 천안함 수색을 돕던 저인망(쌍끌이) 민간 어선 98금양호가 상선과 충돌해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는 등 10명의 추가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천안함은 제1연평해전에 참전했던 함정이었다. 정부는 북한군 연어급 잠수함의 어뢰 공격임을 확인했으며 당시 북한군의 은밀한 공격이 가능한 북한 잠수정이 남한의 바다에 침투해 어뢰 공격을 했다고 결론지었다.
2011년 정부는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46인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연화리에 ‘천안함46용사 위령탑’을 세운다.
‘서해바다를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한 천안함 46용사가 있었다. 이제 그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여기 위령탑을 세우나니 비록 육신은 죽었다 하나 그 영혼, 역사로 다시 부활하고 국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자유대한의 수호신이 되리라…중략…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지키려 애썼던 서해 푸른바다를 가슴에 품고 고이 잠든 천안함 46용사들이여! 그 어느 누구보다도
용맹스러웠던 바다의 전사들이요! 채 꽃 피지 못한 채 산화한 그대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이제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하략.’
천안함위령탑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말없이 출렁일 뿐이다.
# 두무진비경길
-백령흰나래길의 하이라이트, 해상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두무진의 맛이란
이제 백령흰나래길의 하이라이트까지 걸어왔다. 마지막 코스는 두무진 포구를 둘러보고 통일기원비선대암을 돌아본 뒤 해상유람선을 타고 두무진 앞바다는 돌아보는 유람선을 타는 코스다.
두무진은 백령도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자연유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흔히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회자되는 두무진은 마치 태초의 신들이 빙 둘러앉아 회의를 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수십 미터 높이로 해안 가까운 바다 위에 서 있는 절벽과 기암괴석은 1997년 명승 제8호로 지정될 정도로 경이로운 자태를 하고 있다. 각각의 거대한 바위들은 장군들의 투구처럼도 보인다.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두무진은 10억년 전, 모래가 쌓여 퇴적암인 사암이 된 뒤 높은 온도와 압력에 의해 규암으로 변한 퇴적층을 보여준다. 바위엔 가마우지 떼가 새카많게 앉아 있을 때도 있고 해국을 비롯한 다양한 염생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성게, 전복, 광어 등 두무진 포구엔 깔끔하게 정돈된 횟집에서 싱싱한 활어를 맛볼 수 있으며 물범을 관찰할 수 있다 유람선을 탈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