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음악도 듣고, 뉴스도 보고, 심지어 라디오 DJ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그 모든 건 ‘전파’ 위를 타고 흘러왔다. 그리고 1991년 3월 20일, 그 전파에 한 줄기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민영 지상파 방송 SBS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방송입니다”라는 인사를 건넨 날이다.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 라디오의 세계는 사실상 KBS와 MBC가 양분하고 있었다. 익숙하긴 했지만, 어딘가 비슷한 느낌. 그 틀을 깬 존재가 바로 SBS였다. “우리도 다른 방송을 들어보고 싶다”는 청취자들의 갈증에, SBS는 젊고 감각적인 콘텐츠로 화답했다. 단순히 또 하나의 방송이 아니라, ‘민영방송’이라는 이름으로 들려온 새로운 목소리였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이후 언론 환경이 변화하고 있었고, 사회 전반에 ‘다양성’에 대한 열망이 커지던 시기. SBS 라디오의 출범은 그런 시대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SBS 라디오는 시작부터 분명했다. ‘젊은 감성’을 노린다는 것. 당시의 KBS나 MBC가 안정감 있는 구성을 중시했다면, SBS는 과감한 실험을 즐겼다. 때론 위트 있고, 때론 깊이 있게. 음악도 당시 트렌디한 팝송부터 인디 감성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마치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사는 친구” 같은 방송을 만들어냈다.

특히 심야 방송은 SBS 라디오의 진가가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마음이 허전한 새벽, 누군가의 목소리가 위로처럼 들려오던 그 시간. ‘한밤의 음악도시’처럼 감성에 젖어드는 프로그램은 수많은 청춘의 밤을 채웠다. ‘박영선의 FM 데이트’ 같은 프로그램은 진행자 특유의 따뜻함으로 고정 팬층을 만들기도 했다.

라디오는 그 시절,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던 매체였다. 그리고 SBS는 그런 라디오의 매력을 다시 깨운 존재였다.

흥미로운 건, SBS 라디오는 단순히 음악이나 이야기만을 전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 중심의 민영방송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교통, 생활, 문화 정보를 빠르게 전달했고, ‘도심 속의 리듬’을 제대로 캐치해냈다. 라디오는 이제 음악 틀어주는 기계를 넘어서, 도시의 맥박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문화 플랫폼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DJ 중심’의 방송 문화. SBS는 진행자의 개성과 톤, 음악 취향을 최대한 살리는 전략으로 ‘라디오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남겼다. 이는 이후 수많은 스타 DJ를 배출하는 기반이 되었고, 지금의 팟캐스트나 스트리밍 오디오 문화에도 영향을 줬다.

라디오는 한동안 ‘올드한 매체’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요즘 MZ세대 사이에선 라디오 감성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험, 텍스트가 아닌 ‘소리’로 느끼는 감정의 결 – SBS가 그 시작을 열었다.

1991년 3월 20일, 전파를 타고 흘러나온 그 첫 목소리는 단지 개국 인사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한국 방송의 판도를 바꾼 순간이자, 앞으로 더 많은 다양성과 실험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SBS 라디오는 단순히 채널 하나가 더 생긴 게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줄 누군가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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