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전경. (사진출처=헌법재판소)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전경. (사진출처=헌법재판소)

  2025년 3월 21일, 대한민국 정치사에 또 하나의 진기록이 추가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녹색당 등 야5당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공동 발의한 것이다. 대통령도 아닌, 권한대행의 대행까지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윤석열 정부들어 탄핵 30번째 탄핵 시도라는 점에서 ‘탄핵의 일상화’라는 비판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번 탄핵 사유는 크게 세 가지. 윤 대통령과의 ‘내란 공범’ 의혹, 총리 지명 지연에 따른 국정 공백 유발, 그리고 10년 전 미르재단 사건 재조명이다. 탄핵소추안이 제출되자 정치권은 또다시 격한 진영 공방에 휩싸였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탄핵소추안의 핵심은 ‘공범 프레임’이다. 야당은 윤 대통령 탄핵 사유였던 내란죄 혐의에 최상목 대행 역시 깊숙이 관여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그는 경제 수장으로서 국정의 한 축을 맡았고, ‘내란적 국정운영’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차기 국무총리로 거론되던 마은혁 후보를 지명하지 않은 것도 문제 삼았다.

민주당은 최 대행이 의도적으로 총리 공백을 장기화시켜 국정혼란을 가중시켰으며, 이는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의 총리 지명 의무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탄핵이 헌법적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르재단 관련 의혹의 재등장이다. 민주당 등은 2015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최 대행이 미르재단 설립 과정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부당한 출연을 압박했다는 정황이 있었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정식 고발했다.

10년 전 이미 정치적 심판과 법적 처벌이 이뤄졌던 이 사건이 다시 꺼내진 데 대해,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공수처는 고발장을 접수하고 내사 착수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에 따라 탄핵 정당성 확보용 사전 여론전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최상목 대행은 국법을 어지럽히고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공범”이라며 탄핵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특히 “국정의 공백을 수습해야 할 책임을 지닌 자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당내 분위기는 그리 단단하지 않다. 비이재명계(비명계)를 중심으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또 다른 탄핵이 아니라 안정과 민생”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한 비명계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 탄핵도 찬반이 갈리는데, 그 대행을 다시 탄핵하는 것은 정치적 실익보다 리스크가 더 크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민주당 내 일부는 탄핵이 자칫 총선을 앞둔 야권 전체에 대한 피로감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대표가 총선용 ‘반윤 프레임’ 강화를 위해 다시 한 번 전면에 나섰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지금, 역사상 가장 민감한 시험대 위에 서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또다시 대행의 탄핵이 발의되며 정치는 다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국회의 탄핵권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마지막까지 신중해야 할 헌법적 수단이다. 그러나 탄핵이 반복되고, 대상과 명분이 점점 희미해진다면, 이는 헌정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30번째 탄핵. 그 숫자가 주는 정치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정치가 무거워져야 할 때다. 정권 교체도, 책임 추궁도, 국정 쇄신도 결국은 민심 위에서만 가능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또 다른 탄핵’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임을 정치권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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