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티=김청월 기자]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우리의 사고 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언어학자인 발레리 프리들랜드(Valerie Fridland)는 저서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를 통해 언어가 우리의 개인적·사회적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한다. 이 책은 일상적인 언어 표현 뒤에 숨겨진 심리적, 문화적 이유를 조명하며, 우리가 흔히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나 억양이 사실은 깊은 역사와 복잡한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프리들랜드는 언어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라고 말한다. 특정 지역의 방언이나 억양은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인지,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졌는지를 암시한다. 예컨대, 미국 남부 억양은 흔히 따뜻함과 친근함을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프리들랜드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종종 사회적 판단과 연결되며, 이는 인간의 본능적 경향인 집단 형성과 관련이 깊다고 설명한다.
언어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 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이는 특히 청소년 집단에서 두드러지는데, 젊은 세대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거나 기존 표현을 변형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특정 세대가 사용하는 은어(slang)는 그들만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세계를 타 세대와 구분짓는다. 이는 단순히 언어의 유희적 사용을 넘어,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사회적 본능의 반영이다.
언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프리들랜드는 언어 변화가 단순히 오류나 변덕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와 적응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에서 점점 사라지는 'who'와 'whom'의 구별은 문법적으로는 손실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간결하고 직관적인 표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언어가 사용자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동적인 체계임을 보여준다.
프리들랜드는 또한 언어 변화가 종종 특정 집단의 언어적 실험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새로운 표현이나 단어가 처음에는 비주류로 여겨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주류 언어로 통합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selfie'나 'googling' 같은 단어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조어였다. 이러한 변화는 언어가 우리 시대의 기술적, 사회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프리들랜드는 언어와 억양이 사회적 편견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특정 억양이나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다'거나 '무식하다'는 식으로 평가받는 현상은 단순한 선입견이 아니라, 특정 집단을 낮춰 보는 사회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음성 높이나 발음 방식은 종종 과장되거나 감정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여성의 말투 때문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프리들랜드는 강조한다.
이러한 편견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제한하기도 한다. 프리들랜드는 특히 여성들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더 낮은 목소리를 내거나, 특정 표현을 피하는 경우를 지적하며, 이는 언어 사용이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강압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는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여겼던 언어 사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프리들랜드는 언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심리, 사회적 관계, 그리고 문화적 배경을 비추는 창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지는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언어를 단순히 문법이나 발음의 문제로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넘어, 언어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 억양 하나에도 우리 삶의 역사와 사회적 맥락이 담겨 있음을 인식할 때, 언어는 더 이상 무심코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