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쿠퍼(Adam Kuper)의 저서 박물관의 그림자 표지 이미지. (사진출처=
애덤 쿠퍼(Adam Kuper)의 저서 박물관의 그림자 표지 이미지. (사진출처=진성북스)

[서울시티=김청월 기자] 애덤 쿠퍼(Adam Kuper)의 저서 박물관의 그림자는 박물관이라는 공간과 그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이 책은 단순히 박물관의 역사나 전시품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박물관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진화했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그는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이나 예술 작품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권력과 담론의 중심에 위치한 장소임을 강조한다.

쿠퍼는 박물관이 그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린다. 그는 박물관이 특정 시기의 사회적 가치관, 정치적 의도, 그리고 권력 구조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유럽의 주요 박물관들은 대영제국 시기의 약탈과 식민지 지배를 통해 획득한 유물로 채워져 있다.

이 유물들은 단순히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제국주의적 욕망과 서구 중심주의를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그 자체로 역사의 산물이지만, 그 배치와 설명 방식은 현대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 제목인 박물관의 그림자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어두운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박물관이 보여주는 '빛나는 전시' 이면에 숨겨진, 우리가 보지 못한 역사적 진실과 맥락을 뜻한다. 쿠퍼는 특정 집단의 목소리가 과소대표되거나 완전히 지워지는 과정을 지적하며, 박물관의 전시가 정치적 선택의 산물임을 밝힌다.

특히, 식민지 시대 수집된 유물들이 여전히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황은 이러한 그림자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이집트,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가져온 유물들은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주요 전시물로 자리 잡았지만, 이는 원래의 문화적, 종교적, 지역적 맥락을 잃은 상태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물관은 단순한 보존기관이 아니라, 식민주의적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쿠퍼는 박물관이 과거를 보존하는 동시에 현재와 미래를 위한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역사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많은 박물관이 유물 반환 운동이나 디지털 전시 등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더 포용적인 공간으로 변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 포럼은 베냉 청동 조각의 반환을 선언하며 식민지 시대 약탈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박물관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치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애덤 쿠퍼의 박물관의 그림자는 박물관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창고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공간임을 일깨운다. 그의 통찰은 우리가 박물관을 단순히 아름다운 유물의 전시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 이면의 복잡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게 만든다.

현대의 박물관은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이 유산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반성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그 과정을 통해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곳으로 진화해야 한다. 애덤 쿠퍼의 메시지는 우리가 박물관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그 공간에 담긴 그림자를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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