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티=김청월 기자] 최민석 작가의 마드리드 일기는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온 작품이지만, 단순히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나열하거나 낯선 도시에서의 낭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며, 그 경계에서 생겨나는 질문과 통찰을 던진다.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와 사유의 깊이가 더해져 독자는 마드리드라는 낯선 도시에서 시작된 특별한 일상으로 초대받는다.
작가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1년간 머물며 도시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하지만 그가 주목하는 것은 유명한 관광지나 역사적인 유적이 아니다. 대신 슈퍼마켓에서의 사소한 구매, 낡은 아파트의 일상적인 풍경,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소재가 된다. 이러한 디테일은 독자에게 낯설지만 동시에 친근하게 다가온다. 누구나 여행지에서 경험했을 법한 사소한 사건들이 작가의 필체를 통해 특별한 의미로 변모한다.
특히 최민석은 "일상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마드리드의 골목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 그는 우리가 종종 간과했던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여행'은 단순히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일상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는 행위라는 그의 관점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시각을 제공한다.
마드리드 일기는 작가 특유의 위트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유머는 가벼움이나 얄팍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유머는 현실을 직시하며 그 속에서 웃음을 찾는 데서 비롯된다. 예컨대 작가는 마드리드에서의 생활고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그 어려움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월세를 내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나 스페인어를 서툴게 구사하며 겪는 소소한 실수들이 독자의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이면에는 낯선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최민석은 자신의 경험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현대인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소비문화에 대한 그의 비판은 유쾌하지만 날카롭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은 다르다"는 문장은 독자에게 소비의 본질과 우리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일기라는 개인적인 형식 속에 철학적인 사유를 담아낸다. 그는 "도시는 그 자체로 텍스트"라고 말하며, 마드리드를 하나의 거대한 책으로 읽는다. 골목길과 사람들, 시장의 소음과 광장의 고요함 모두가 이야기의 조각들이며, 그 조각들을 연결하며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는 곧 독자에게 "내가 살아가는 도시를 어떻게 읽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최민석은 마드리드에서의 삶을 통해 '정착'과 '이동'의 의미를 탐구한다. 여행자와 이주민의 경계에 선 그는, 한곳에 머무르며 도시와 관계를 맺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는 동시에 이동 자체가 주는 자유로움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이러한 양가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내며, 현대 사회에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마드리드 일기는 작가가 마드리드라는 도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책 속에서 최민석은 "일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깨달음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보이는 순간, 즉 여행자가 되는 순간에만 가능한 발견일지도 모른다.
독자는 최민석의 글을 통해 여행과 일상, 웃음과 성찰, 정착과 이동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을 다시 바라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마드리드 일기는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일상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자,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답변이다. 마드리드라는 도시는 배경일 뿐, 결국 작가가 진짜로 탐구한 대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그 자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