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티=김청월 기자] 2000년 12월 20일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특별한 날로 기억된다. 네덜란드 출신 명장 거스 히딩크(Guus Hiddink)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공식 취임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민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는 역사적인 무대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여전히 도전 과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의 취임은 단순히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 축구가 새로운 비전을 품고 세계와 경쟁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받는다.
거스 히딩크는 유럽 축구 무대에서 성공한 지도자로, 전술적 유연성과 선수 관리 능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준결승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증명했다. 히딩크의 축구 철학은 단순한 체력적 훈련을 넘어 선수들의 창의성과 기술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당시의 대한민국 축구와는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었다.
한국 축구는 주로 강도 높은 체력 훈련과 군대식 규율에 의존해왔지만, 히딩크는 이러한 틀을 과감히 깨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도입했다. 히딩크는 취임 직후 "한국 축구의 잠재력을 믿는다"고 강조하며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팀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수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히딩크의 첫걸음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 대표팀은 초기 평가전에서 연달아 패배하며 언론과 축구 팬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 히딩크의 새로운 접근 방식은 한국 축구계와 문화적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그는 기존의 주전 위주 선발 방식을 탈피해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고, 선수들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유도했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그의 방식을 두고 "과도한 실험"이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히딩크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고수하며 선수들에게 "경기장에서 두려움을 버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특히 해외 전지훈련을 적극 활용해 선수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개개인의 체력과 기술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히딩크가 취임한 시점에서 한국 축구의 목표는 명확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월드컵 무대에서 단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던 한국 축구는 세계의 벽을 실감하며 좌절해왔다. 히딩크는 이러한 한계를 넘기 위해 무엇보다 팀의 정신적, 전술적 성장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은 강한 체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지만,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으며, 선수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플레이를 요구했다. 이는 단순히 축구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한국 축구가 가져야 할 새로운 태도와 자세의 문제였다.
거스 히딩크의 대한민국 축구 감독 취임은 단순히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한 사건을 넘어 대한민국 축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의 지도 아래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하며 전 세계에 감동을 선사했다. 비록 히딩크의 취임 초기에는 비판과 의구심이 많았지만,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적 리더십으로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의 취임이 2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대한민국 축구는 여전히 히딩크가 심어놓은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의 지도 철학과 혁신적 접근은 단지 축구라는 스포츠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변화와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이다.
2000년 12월 20일, 히딩크의 취임은 한국 축구의 운명을 바꿨고, 이는 단지 과거의 기억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히딩크가 열었던 길은 오늘날에도 대한민국 축구가 세계와 경쟁하며 나아가는 데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