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백 칼럼] 끝까지 현역이었던 인간 이순재, 그가 남긴 시간의 품격
고요히 저무는 뒷모습조차도 사랑받는 사람이 있다. 한국 연기사의 한 축을 이루며 70년 가까운 세월을 ‘현역’으로 살아낸 배우 이순재가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한 시대의 상징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생애와 연기, 그리고 남긴 질문들을 돌아보는 일은 곧 우리 시대의 품격을 점검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각오였던 배우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서울로 내려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했다. 학문에 몰두하던 청년의 앞길을 돌린 것은 로렌스 올리비에의『햄릿』이었다. 한 편의 연극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고, 결국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했다.
이 첫걸음은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었다. ‘해볼까’가 아니라 ‘평생 한다’는 약속이었다. “매 작품이 유작이라는 마음으로 임한다”는 그의 말은 어쩌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69년간 멈추지 않은 그의 발걸음은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는 연기를 일로서가 아니라 생으로 받아들였고, 그 무게만큼 기쁨과 고통을 온전히 품어낸 배우였다.
장르를 움직이고 세대를 넘은 존재감
영화·드라마·연극을 가리지 않고 그의 이름은 늘 중심에 있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는 시대의 가부장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켰고, 허준, 상도, 이산 등 사극에서는 전통적 한국 드라마의 무게감을 책임졌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강점은 ‘안전한 영역’에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다. 60대 이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완전히 다른 코믹 캐릭터로 반전을 보여줬고,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직진 순재’라는 별칭과 함께 젊은 시청자들에게까지 사랑받았다. 나이를 잊게 만드는 유연함,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정신이 그를 ‘오래된 배우’가 아닌 ‘지금의 배우’로 만들었다.
연극 무대에서도 그는 끝까지 퇴장하지 않았다. 리어왕, 갈매기 등 대작에 서며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배우로 남겠다는 의지를 증명했다.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관통한 존재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역’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
그가 특별히 존경받는 이유는 단지 오래 연기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이를 핑계로 숨지 않았고, 매 순간 새로움을 선택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생전에 “배우는 연기할 때 생명력이 생긴다”며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직업관을 넘어, 존재의 이유를 무대에서 찾았던 사람의 고백이었다.
2024년 ‘90세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쓴 것도 그의 꾸준함이 만든 결과였다. 또한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현장과 교육을 병행했다. 그는 단지 작품에 등장하는 배우가 아니라, 연기예술 전체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었다.
시대와 함께 흐른 아이콘
이순재의 생애는 곧 한국 현대 대중문화의 연대기와 맞닿아 있다. 혼란의 시대를 지나 방송이 대중에게 깊이 스며들던 순간, 그의 드라마는 국민의 일상과 함께했다. 21세기 에는 시트콤과 예능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고, 그는 그 변화 속에서도 늘 ‘현재형’의 얼굴로 존재했다.
그의 길은 배우라는 직업의 사회적 영향력도 증명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력은 ‘배우도 공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단지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와 소통하는 인물이었다는 의미다.
그가 남긴 숙제와 질문
이순재의 별세는 한 배우의 퇴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 연기계가 지켜온 한 시대의 정신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장르를 넘고 세대를 넘어 사랑받은 배우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충분한 사람’이 아니라 ‘계속할 사람’이었다. 늘 다음을 준비했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를 삶으로 삼았다.
그는 후배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 “연기가 쉽지 않다. 평생 해도 모자라다.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이 말은 단지 기술적 조언을 넘어, 직업윤리와 태도에 대한 일침이었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지금의 배우들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책임과 태 도로 자신의 일을 대하고 있는가.
무대를 떠나지 않는 방식으로 남다
지난 11월 25일 새벽, 그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시간들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그는 언젠가 “기회는 언젠가 오니 늘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준비 된 사람의 삶이었다. 무대 위에서 빛났던 존재가 무대를 내려놓기보다 하늘 위에서 다른 방식의 빛을 품게 된 것이다.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가 거쳐간 장면들—엄격했던 아버지, 지혜로운 어른, 때로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노인—은 우리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의 연기는 멈추었지만,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순재는 우리에게 ‘끝까지 현역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남겼다. 그것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일이다. 그가 남긴 시간의 품격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오래도록 길잡이가 되기를
[이순재] (1934~2025)
1934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 연기자로 활동 시작
1960년대
드라마 《수양대군》, 《토지》, 《태양은 영원히》 등으로 주목받음
1970년대
영화 《돌아온 팔도사나이》 등 다수 출연, 방송연기대상 수상
1980년대
드라마 《전원일기》, 《한지붕 세가족》 등 국민 드라마 출연
1990년대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로 전국적 인기를 얻음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민자당 비례대표) 당선 — 배우 출신 정치인으로 활동
2000년대
드라마 《허준》, 《상도》, 《이산》 등 굵직한 사극에서 중후한 연기로 존재감
2007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이순재 신드롬’ 재점화
2013년
예능 《꽃보다 할배》 출연 — 세대 초월적 인기 재확인
2010–2020년대
《리어왕》《갈매기》《아버지》 등 연극 무대 꾸준히 출연
2024년
90세 생일 맞아 ‘연기대상 공로상’ 수상, “무대 위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 언급
2025년
11월25일 노환으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