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새긴 전쟁의 리더십, 백선엽과 ‘승리의 시작’
기억과 판단 사이, 백선엽을 스크린에 담다 다부동에서 대전현충원까지, 영화로 돌아온 백선엽
[서울시티=김청월 기자] 2025년 6월 19일, 한국 현대사의 전장을 스크린으로 옮긴 다큐멘터리 영화 《승리의 시작》이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군사 전문가이자 4성 장군, 외교관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백선엽 장군의 삶이 스크린 위로 소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는 단순한 전기영화를 넘어, 전쟁과 분단, 외교와 재건의 시대를 살아낸 한 인물의 복잡한 서사를 조명한다.
영화의 감독은 22년간 백 장군을 추적하고 기록해온 다큐멘터리스트 권순도 감독. 2003년부터 이어진 장기 취재와 국내외 증언, 전장 답사, 복원 영상으로 완성된 이번 작품은 군인의 초상을 그리는 동시에 대한민국 현대사의 원형질을 탐색하는 기록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특히 다부동 전투와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전쟁 발발 직후 패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끝내 버텨낸 다부동 전투는 미국 전사에서도 '승리의 전환점'이라 불리는 명장면으로, 백 장군이 그 중심에 있었다.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는 유명한 발언은 단지 전투의 구호가 아니라, 전쟁의 절박성과 리더십의 윤리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면으로 그려진다.
다큐멘터리는 동시에 백선엽이 전후 외교관과 장관으로 활동했던 이력까지도 밀도 있게 다룬다. 대만·프랑스·캐나다 대사를 역임하고, 교통부 장관으로서 행정 경험을 쌓으며 한미동맹과 국가 재건의 외곽을 설계한 그의 또 다른 얼굴이 소개된다. 전투의 총성뿐 아니라, 국제 외교의 의전과 담판 속 백선엽의 태도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또 다른 퍼즐 조각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물론 역사적 논쟁도 피해가지 않는다. 백선엽 장군에 대한 친일 논란과 그에 대한 다양한 시각 역시 숨기지 않고 담았다. 제작진은 '왜곡 없이, 자료와 증언을 통해 최대한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이 같은 서술 방식은 단순한 영웅주의나 미화가 아닌, 한국 현대사를 구성하는 인물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승리의 시작》은 영화적 몰입감도 상당히 높다. 실감 나는 전투 재연, 기록 영상과 인터뷰의 조화, 현장감을 살린 카메라워크는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극영화 못지않은 시청각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교과서 밖의 생생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영화의 국회 시사회는 6월 초, 여야 의원과 국방 관계자 등 400여 명이 참석해 열띤 관심을 보여줬다. 이 자리에서 제작진은 "역사는 기억될 가치가 있다. 다만 그 기억은 팩트에 근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로서의 이 영화가 가지는 의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한 사람의 기록은 곧 시대의 기록이며, 그 안에 담긴 맥락은 분열이 아닌 통합을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승리의 시작》은 제목처럼, 백선엽이라는 이름을 둘러싼 ‘논쟁의 끝’이 아닌,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성찰의 시작’으로 기능할 것이다. 지금, 전쟁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에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백선엽]
1920.11.23 평안남도 강서군 출생
1939 만주군관학교 입학 (제간도 특무대 복무)
1945 광복 이후 귀국, 군 입대 준비
1946.1 국방경비대 창설 참여 (1기생, 대위 임관)
1949 제5사단 창설 및 초대 사단장 임명
1950.6.25 6·25 전쟁 발발 당시 제1사단장 (북진 이후 서울 방어, 다부동 전투 지휘)
1950.9 대령에서 소장으로 초고속 진급 (전시 공로)
1951.6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3성 장군(중장) 진급
1952 제1군단장, 제2군 사령관 역임
1953 정전협정 체결 참여 및 전후 복구 작업 주도
1954 국군 최초 4성 장군(대장) 진급
1957 육군참모총장 역임 후 예편
1958~1971 주 대만·프랑스·캐나다 대사 역임
1971~1975 교통부 장관 및 국가재건최고회의 외교담당위원
1980년대 예비역 원로 군인으로서 활동, 군사·외교 관련 저술 발표
2010 국립서울현충원 안장 논란 속 ‘친일인명사전’ 등재 대상 논의
2020.7.10 서울에서 별세 (향년 99세)
2020.7.15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국군장으로 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