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꽃" 허보리 작가 개인전 《Blooming Made》 개최

2025-06-04     이상준 기자
허보리 개인전 포스터 (출처=갤러리 플래닛)

갤러리 플래닛은 2025년 5월 28일부터 6월 27일까지 작가 허보리(b. 1981)의 개인전 《몸 꽃(Blooming Made)》을 개최한다. 허보리는 특유의 조형 언어를 바탕으로 일상의 단면을 탐구해온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 ‘생존과 돌봄’, ‘노동과 존재의 흔적’을 식물의 형상에 빗대어 표현한 회화, 드로잉, 조각 등 약 20여 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대표작인 전면 회화 형식의 식물 추상 연작 〈Little Flowers〉와 〈Tree Abstract〉을 비롯해, 강화소창, 일상복, 이불 등 섬세한 직물이 주요 매체가 되는 입체 작업 시리즈 〈하얀 숲〉, 〈Blooming〉도 함께 소개되며, 이는 삶과 죽음은 물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내밀한 일상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을 반영한다.

허보리, Little Flowers, 2025, oil on canvas (출처=갤러리 플래닛)

허보리는 초기에 ‘탱크’와 ‘고깃덩어리’ 형태의 오브제를 흐물거리는 천과 자수 기법으로 은유하며 치열한 삶의 단면을 다루었다. 이후 2021년 제주도로 작업 거점을 옮기면서 작가는 ‘식물 추상 연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화폭 안에서 반복되는 잎과 가지는 멀리서 보면 고요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경쟁하듯 얽혀있다. 이들은 머뭇거리는 듯하면서도 대담하게 칠해진, 전투적인 붓질을 통해 그려져 있다. 덧없이 아름다운 생명이자 결국 소멸로 향할 수 밖에 없는 바니타스인 ‘꽃’은 죽음을 인식하는 유일한 종인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유영한다. 제주에서 채집한 풍경과 대상을 캔버스라는 화면에 위에 옮길 때, 그 대상이 지닌 기운을 포착하여 끊임없는 붓질로 화면을 쌓아 올려 나간다. 이러한 붓질을 반복은 하나의 수행으로 이어지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미묘한 여백은 동양화의 표현 방식을 실험하는 시도이다. 동시에, 이 화면은 관객의 촉각과 감각의 층위를 확장시키는 동시에 감각적 경험으로 이어진다.

허보리, Tree Abstract, 2025, oil on canvas, 162x130cm (출처=갤러리 플래닛)

작가는 더불어 〈하얀 숲〉, 〈Blooming〉 연작을 통해 평면을 넘어 만질 수 있는 덩어리의 입체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경쟁 사회에서 끊임없는 노동을 제공하는 인간의 연약한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보호막이 되어주는 양복, 이불, 소창과 같은 일상의 직물을 해체하고 꿰매어 덩어리 형태의 조각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경쟁 사회의 전투복이자, 삶과 죽음을 통과하는 천의 물성을 통해 생의 은유를 드러내는 동시에, 식물에 투영된 인간의 몸의 흔적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한 필, 죽을 때 한 필 씩 필요하다던 한국 고유의 원단인 소창은 기저귀 뿐만 아니라 이불이나 행주, 또 가장 연약한 신체를 보듬는 가제 수건과 같이 인간의 생명에 직결된 직물이다. 허보리는 이 소창을 물에 오래 담가 풀기를 빼고 여러 번 삶고 다린 후 해체해 바느질을 통해 식물의 형태로 재조립해 ‘나무의 춤’을 표현했다. 식물에 은유된 인간의 ‘몸’은 전시 제목인 ‘몸 꽃’으로 피어나 관객을 만난다.

허보리, Blooming, 2025, oil on canvas, 44x36x9cm (출처=갤러리 플래닛)

허보리 작가는 제주 숲속에서 마주한 식물 군집의 무작위적이고 치열한 생존 양상 속에서 인간 삶의 혼란스러움과 생의 열망을 떠올렸다. 초기에는 욕망처럼 얽히고 설킨 식물의 형상을 와글거리는 붓질로 담아냈다면, 최근에는 반복적이고 강렬한 터치를 화면 전체에 축적하는 추상 회화로 발전했다. 이러한 화면은 멀리서 바라보면 고요하고 평온한 결을 이루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없이 중첩된 붓자국과 물감의 질감 속에 생의 긴장감과 격렬한 감정이 응축되어있다.

허보리, Blue, oil on canvas, 91x116cm (출처=갤러리 플래닛)

미술평론가 강수미는 허보리의 작업을 “삶에서 고귀한 것들이 미술이라는 협소한 대지 위로 내려앉는 과정”이라 평하며, 그녀의 ‘꽃’이 단순한 자연의 장식이 아닌, 고단한 삶을 살아낸 몸의 흔적이자 작가의 끊임없는 자기 탐구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과 생계, 죽음과 애도를 아우르는 존재론적 상징이기도 하다.

허보리, Pink, oil on canvas, 91x116cm (출처=갤러리 플래닛)

허보리의 열여덟 번째 개인전 《몸 꽃》은 삶의 기억이 스며든 천과 겹겹이 쌓인 붓질을 통해, 몸의 감각이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편린을 작품으로 만들어, 그 안에 담긴 생의 감정과 시간을 관람자와 함께 마주하고자 한다.

허보리, Yellow, oil on canvas, 91x116cm (출처=갤러리 플래닛)

허보리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갤러리 플래닛, Bol Gallery(싱가포르), 통인화랑, 갤러리 나우, 가나아트파크 등에서 18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또한 서울대학교 미술관, 이화익갤러리, 롯데 애비뉴엘, 유아트스페이스, OCI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셀트리온, 태성문화재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