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눈동자의 전설,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기리며

2025-03-23     김청월 기자
Elizabeth Taylor: A Life from Beginning to End (Biographies of Actors). (Photo=Hourly History)

[서울시티=김청월 기자] 2011년 3월 23일, 영화계는 한 시대의 종언을 맞았다. 미국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향년 79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애도하게 했다. 그녀의 눈동자처럼 신비로운 바이올렛 컬러의 별 하나가 영화계의 밤하늘에서 조용히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20세기 할리우드의 정수를 응축한 상징이었고,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강렬한 존재감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3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 미국으로 이주했고, 아역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해 곧 세계적인 여배우로 성장했다. 12세 때 영화 내셔널 벨벳(1944)에서 주연을 맡으며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자이언트(1956),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1958),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에서 진한 인상을 남기며 명실상부한 스타로 군림했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단지 스크린 속에서만 반짝이지 않았다. 현실 속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사랑과 결혼, 이혼, 병마와 싸움 등 굴곡진 삶을 살아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총 여덟 번 결혼했으며, 그중 두 번은 같은 남자(리처드 버튼)와의 결혼이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1963) 촬영 중 시작된 그와의 사랑은 세기의 로맨스로 불렸고,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테일러는 당시 여성 연기자 중 최고 수준의 출연료를 받았으며, “헐리우드 최초의 100만 달러 여배우”라는 수식어도 그녀의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연기력은 그 화려한 외모에 가려 평가절하되기도 했지만, 그녀는 두 번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실력을 증명했다. 버터필드 8(1960)과 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에서 그녀는 고통과 열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특히 <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에서 보여준 중년 여성의 절망과 분노는 테일러의 필모그래피 중 정점으로 꼽힌다.

그녀의 또 다른 위대함은 연기를 넘어선 영역에서 빛났다. 테일러는 에이즈 예방과 치료를 위한 운동에 헌신하며 자선 활동가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80년대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냉소적이고 차별적이던 시기, 그녀는 할리우드에서 최초로 공개적으로 에이즈 관련 기금을 모으고 인식을 제고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만 해도 많은 유명 인사들이 에이즈와의 연관성을 피했지만, 테일러는 거침없었다. 그녀가 설립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이즈 재단(ETAF)’은 지금도 수많은 환자들을 돕고 있다.

그녀의 별세는 단순히 한 배우의 죽음을 넘어, 할리우드 황금기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후, 테일러의 부재는 더욱 깊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가 남긴 보라색 눈동자의 잔상은 여전히 대중의 기억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 병마로 인해 오랜 시간 투병했지만, 그녀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장례식은 생전에 친분이 깊었던 스타들과 가족들이 참석해 조용하고 품위 있게 진행되었다. 그녀는 “항상 늦게 등장하던 성격을 반영해, 장례식에도 15분 늦게 도착했다”는 마지막 농담과 함께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오늘날도 여전히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수많은 이들의 롤모델이자, 클래식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그녀의 영화는 여전히 회자되며, 그녀의 삶은 여전히 영감을 준다. 우리는 그녀를 통해 스타란 단순히 스크린 속 인물이 아니라, 시대의 공기와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배웠다.

그녀가 떠난 3월 23일, 매년 이 날이 되면 전 세계 영화 팬들과 후배 배우들은 조용히 그녀를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눈동자 속 보랏빛처럼, 어딘가에서 여전히 반짝이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Rosemond Taylor]

1932년 2월 27일 – 영국 런던에서 태어남.

1939년 –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

1942년 – 10세의 나이로 There's One Born Every Minute를 통해 영화 데뷔.

1944년 – 내셔널 벨벳 (National Velvet)에 출연하며 아역 스타로 대중적 인지도 획득.

1950년대 – MGM의 주요 여배우로 활동하며 할리우드 스타로 급부상.
주요 작품: 작은 여성들(1949), 자이언트(1956),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1958) 등.

1957년 – 배우 마이크 토드와 결혼. 같은 해 딸 리자 태어남.

1958년 – 마이크 토드 비행기 사고로 사망.

1960년 – 버터필드 8로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1961년 – 클레오파트라 촬영 중 리처드 버튼과 연인 관계 시작.
당시 두 사람의 관계는 대중적 스캔들을 불러일으킴.

1964년 – 리처드 버튼과 결혼 (5번째 결혼).

1966년 – 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1974년 – 리처드 버튼과 이혼.

1975년 – 재결합 후 다시 결혼했으나, 1년 만에 두 번째 이혼.

1980년대 – 연기 활동 감소. 에이즈 퇴치 운동에 적극 참여.

1985년 – 에이즈 연구재단 ‘amfAR’ 공동 설립.

1991년 –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이즈 재단’ 설립.

1990년대 이후 – 드문 TV 및 영화 출연, 향수 및 화장품 사업에서 성공.
대표 향수 브랜드: White Diamonds, Passion 등.

1999년 – 미국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

2000년 – 대영제국 명예훈장(DBE) 수여받아 '데임(Dame)' 작위 받음.

2004년 – 심장질환 등으로 공식 은퇴.

2011년 3월 23일–심부전으로 별세(향년 79세).로스앤젤레스 포리스트 론 묘지에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