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며 독창적인 그의 세계' 문형철의 《반짝이는 생명》 전
갤러리 라우(羅友)는 2025년 2월 1일 ~ 3월 30일까지 경주 예술의 전당내 라우갤러리에서 작가 문형철 초대 개인전을 개최한다.
문형철작가는 문형철의 주제 의식은 '생명'에 있다. 생명의 구체적 형상으로 자연물과 인간을 다루는데, 평이하고 보편적인 주제이지만 매우 섬세하고 독창적으로 색채를 다룬다. 그의 색채 감각 은 촉감의 상상과 눈의 조망을 견고하게 엮는다. 나비의 날개 짓은 강렬한 금속성으로 인해 만지는 상상으로 촉감을 불러일으킨다. 촉감은 곧 초월하여 정물화처럼 한떨기 꽃으로 변형된다. 이렇게 나비와 꽃의 셔틀은 N개의 색채 감각이 '따로 또 함께' 다성악(多聲樂)을 이루며 촉각과 시각의 종합을 이루는 것이다.
문형철은 재학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묘사의 대상은 변해왔지만 '현실의 창으로 본 생명의 재현'이라는 주제는 일관된다(작가인터뷰). 생명의 재현에서 촉각과 시각이 하나의 조형공간으로 수렴되어 색의 다성악(多聲樂)을 이루면서 사회적 색채를 구현한다는 점 또한 문형철 작품만의 특징이다.
문형철에게 '회화적인 것'이란 애벌레에서 나비로, 나비에서 나(의 꿈)으로, 나에게서 장자에게로, 장자에서 모든 너에게로 움직여 가는 것이며, 모든 움직임의 관계를 '형상을 통하되 색채로 묘사'해낸다. 색채를 통해 적극적으로 작가의 해석이 개입되면서 색채는 바로 '사회적인 색채`가 된다. 인공적이고 산업적인 도시의 삶, 자본에 따라 형성되는 관계, 그 관계 속의 인간의 모습을 모두 포함한 '관계의 본질'에 대해 작품은 성찰한다.
문형철의 생명, 눈과 손의 종합
-회화적인, 아포리아 크라타이기(Aporia Crataegi)
1. 반짝이는 생명, 움직이는 색채
문형철(b. 1961)은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졸업 이후 대 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 문형철은 중견작가로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여러 단체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 한편으로 작가는 미술인들의 모임인 한국미술협회, 대구현대 미술가협회, 한국신구상회, TAC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창작 활동에서 잠시 물러나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한 작가는 현재 경상북도 청도의 작업실 에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문형철은 제1회 매일미술대전 대상 수상, 제1회 공산미술제 특선, 제17회 대구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하며 청년작가로서 주목받아 그 입지를 굳힌 바 있다. 붓으로 형상(figure) 을 다루는 그의 솜씨는 <꿈(DREAM)> 연작의 주요 모티프 '나비(아포리아 크라타이기 Aporia Crataegi)'를 통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한없이 연약한 나비의 날개 짓에 차 가운 금속의 무게를 올려놓음으로써 작가는 나비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정서를 '아포리 아(수수께끼)'로 만들어 버린다.
문형철은 초기 작업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형상'과 작품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벗어난 적이 없다. 형상의 문제를 항상 꼭 쥐고 있는 셈인데, 형상을 통해 작가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의 형상은 색채를 뒤집어쓰면서 전적으로 회화적인 이미지로 전환된다. 전환의 문제, 변태(metamorphosis) 혹은 변화(化-트랜스포머와 같은 변화)의 문제는 '생명의 감각'을 붙들고자 한 작가의 창작 의지와 상통하는 것이다. 문형철 작품에 모인 생 명 감각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섬세한 색의 변주 속에서 그리고 색의 변주를 통해서 실현된다. 근작 <꿈(DREAM)>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로 전환되는 착시를 달성함으로 써 전환이 극적으로 실현된다. 활동사진이 아님에도 근작(近)에서는 나비가 꽃송이 로 사라져 버리거나 꽃 송이에서 나비의 무리가 출현하는데, 둘의 경계는 나뉠 수 없다. 이 점 때문에 <꿈>의 무대는 더욱 극적이다. 장자(Zhuāngzi 좡즈)에게 헌정할만한 <꿈 (DREAM)> 연작에는 반복되는 색채가 어디에도 없다. 수만 가지 색상을 통해 형상도 이 루고, 서로 다른 형질(形質)로 전환되기도 하면서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이는 세잔 (Paul Cezanne)처럼 색채를 통해 대상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인데, 문형철의 색채는 '움직임,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독창성이 있다. 문형철의 화면은 정지 화면 같은데도 움직이고 있으며 심지어 변환이 일어난다. 이는 작가만의 색채 운영 때문이다. 문형철에게 '회화적인 것'이란 애벌레에서 나비로, 나비에서 나의 꿈)으로, 나에게서 장자 에게로, 장자에서 모든 너에게로 움직여 가는 것이며, 모든 움직임의 관계를 '형상을 통하 되 색채로 묘사해낸다. 색채를 통해 적극적으로 작가의 해석이 개입되면서 색채는 바로 '사회적인 색채'가 된다. 인공적이고 산업적인 도시의 삶, 자본에 따라 형성되는 관계, 그 관계 속의 인간의 모습을 모두 포함한 '관계의 본질'에 대해 작품은 성찰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의 감각에 대해 지니는 작가의 연민이 작품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사회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은 문형철의 초창기 작품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가 의 태도와 방법 모두에 관통하고 있는 '일관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인간의 모습을 다루는 작품(<상실-그리고 흔적>연작, 1993 전후), 망(網)위에서 떠도는 배아(胚芽(<생 명의 노래>연작, 2000), 과다 노출된 듯한 색감 처리(<자연인식>연작, 2006-7), 쨍그랑 거리는 나비의 금속 날개 짓과 형상 등은 산업적이면서 자본의 상징 숲을 배회하는 형상들 이다.
풀, 잎사귀, 배아, 나비 등의 형상은 모두 자연스럽고도 알아차리기 쉬운 모습임에 비해 그 것들을 묘사하는 색감은 자연스럽지 않다. 문형철이 다루는 색은 TV가 나오기 이전에는 몰랐을 그런 색감들, 컴퓨터가 나오기 이전에는 몰랐을 그런 색감들, 사이버 판타지가 등 장하기 전에는 몰랐을 그런 색감들이다. 신속하게 여러 지역을 다니기 전에는 몰랐을 극지 의 색감들도 결국은 기술의 이기利器)로 인해 알게 된 색감이니 기술 사회적인 색채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얀 바 에이크(Jan van Eyck) 작품에 등장하는 오렌지의 색채처럼. 어느 경우이든 문형철 작품에서, 자연과 색이 하나의 형상에서 극명하게 대립되어 긴장을 만들어낸다. 작품에서 긴장은 사회적인 것, 산업적인 것, 자본적인 것의 어떤 본질을 건드 린다. 우리 주변에 늘 있는 풀, 꽃, 나비에서 우리는 금속의 질감도, 화학적인 질감도 발견 할 수 없는데, 이런 맥락에서 작품에서 드러낸 금속성의 질감이나 노출된 필름의 질감은 문형철의 '해석된 색채'로서 이미 기술에 물든 시선으로 기술사회의 에토스를 담아 낸 사 회적인 색채인 것이다.
유화를 발명한 얀 반 에이크의 작품을 보면, 화려한 보석이나 자연의 묘사 모두가 캔버스 에서 막 태어난 것처럼 빛을 발하며 그 자체로 숨 쉬고 있다. '네트 위에 떠다니는 생명체' 나 SF에나 등장하는 인공적인 정원 '자연인식', 어느 순간 초월하여 나비에서 자연(꽃)으로 도약하는 꿈의 공간 역시 얀 반 에이크 만큼이나 생생하고 섬세하다. 생명 감각과 인공 의 기분이 불가분리로 공존하면서도 충돌하는 문형철의 아포리아는 '역사적인 신구상 이 후' 등장한 경향이다. 1960년대 서구 대중매체와 신기술의 영향 아래 전개된 구상적인 이 미지는 신구상회화의 흐름으로 이해되는데, 1980년대 작가의 대학을 다니며 학습이 이 •루어지고 작풍(風)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문형철의 작업을 포스트 신구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 신구상'은 새로운 기술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확장된 신구상(XR 신구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작가의 새로운 형태는 '촉감'과 '흐름의 감각'을 포함하는 확장된 현실(extended reality)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2. 손과 눈의 종합
유화 작업을 하는 문형철은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작업 과정이 매우 고되고 시간도 많이 들어간다. 그야말로 장인적인 것이다. 가까이에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착시효과를 활용한 쇠라(Georges Seurat)의 작업만큼이나 미세한 여러 색으로 가득하다. 수십 마리의 나비 가 있는 장면이나 만개하여 충만한 꽃 정물이 눈앞에 보이지만 사실 화면의 주인공은 색채 이다. 화면의 깊이와 질감, 동세(勢)를 결정하는 것은 색채이기 때문이다. 한땀 한땀 색 으로 채워 놓은 그의 작품은 AI가 제작한 것처럼 깔끔하고 선명한데, 작품의 모든 것은 노 동집약적인 그의 손길, 붓끝에서 나온다. 견고하게 형상을 구축한 붓끝이 숨길처럼 자연스 러운 공간의 대기를 조장하며, 색의 농도를 통해 깊이를 구축해가기 때문이다. 작품에 구 축된 극적인 공간 연출과 분위기 역시 재현의 기술(techne)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색 을 주목할 때 보다 심도 있는 작품감상이 이루어진다. 앞서 작가가 해석한 색채가 동시대 의 분위기를 담아낸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색채'라 언급한 바 있는데, 사회적 색채가 결정 적 역할을 한 사례는 미술사에서 이미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리차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1922-2011)은 광고의 피상성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네거티브 필름의 색채이미지로 표현한 바 있으며 백남준의 판화, 실크스크린도 전자 주사선의 인공 색채가 반영된다. 이러한 시대의 징표들은 '일상의 현실감'을 강하게 환기시키면서, 추상 에서 구체로, 물질에서 오브제로, 정신에서 일상으로 이동하며 1980년대 신구상의 전개로 이어진 바 있다.
1980년대 우리의 현실이란 '마이 카(my car)' 시대라는 소비의 허명 (名)이 이끈 소비 산업의 일상이다. 이런 일상을 주목하게 하는 방법으로 산업의 대항 개 념으로서 자연을 돌아보며, 생명을 다시 생각하고, 피상성을 돌파하기 위해 손의 감각, 촉 감을 불러낸 것이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문형철에게 이와 같은 시대의 분위기가 영향 을 미치지 않았을까 한다.
문형철의 주제 의식은 '생명'에 있다. 생명의 구체적 형상으로 자연물과 인간을 다루는데, 평이하고 보편적인 주제이지만 매우 섬세하고 독창적으로 색채를 다룬다. 그의 색채 감각 은 촉감의 상상과 눈의 조망을 견고하게 엮는다. 나비의 날개 짓은 강렬한 금속성으로 인 해 만지는 상상으로 촉감을 불러일으킨다. 촉감은 곧 초월하여 정물화처럼 한떨기 꽃으로 변형된다. 이렇게 나비와 꽃의 셔틀은 N개의 색채 감각이 '따로 또 함께' 다성악(樂) 을 이루며 촉각과 시각의 종합을 이루는 것이다.
문형철은 재학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묘사의 대상은 변해왔지만 '현실의 창으로 본 생명의 재현'이라는 주제는 일관된다(작가인터뷰). 생명의 재현에서 촉각과 시각이 하나 의 조형공간으로 수렴되어 색의 다성악(多聲樂)을 이루면서 사회적 색채를 구현한다는 점 또한 문형철 작품만의 특징이다.
일명 '나비꽃' 그림은 감각적으로 신기하고 신비하다. 매우 간단한 듯하면서도 끝나지 않 는 감각의 바이브, 물리적인 진동이 작품에 상존(常存)한다. 그런데 이 진동은 주관의 내면 에서 유래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주관의 내면과 추상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현실감이나 허구적인 이야기를 생산하는 '그 현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철저하게 손으로 그린, 성실 과 반복의 노동집약적인 작업 속에 쌓여가는 실천지(實踐)로 작가는 사실과 허구의 혼 합적인 '기술이미지의 기미(機微)'로 동시대 현실을 재현한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오늘날의 구체적 현실을 생각해보면, '나비의 꿈'에서 제시되는 '작 가만의 형상'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색채 해석은 또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