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륵과 무슨 관계가?" 이끼바위쿠르르 신작 공개
생태에 뒤덮인 채 시간을 버티며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미륵 석상에 주목하며, ‘풍경’과‘우리’를 연결하기를 시도 미래를 상징하는 부처인 미륵을 통해 과거를 살아가는 삶에 관해 탐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되는 이끼바위쿠르르의 첫 개인전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은 생태에 뒤덮인 채 시간을 버텨내며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돌과 장소에 주목한다. 특히 이러한 돌 중에는 미래를 상징하는 부처인 미륵의 형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미륵은 동아시아 전통에서 미래를 상징하는 부처로서 동학, 불교, 무교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풍경 속에 자리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륵 조각상들은 사찰 주변에서 잊혀지거나, 마을 어귀와 들판 속에서 방치된 채 버려진 돌로 남아 있게 됐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러한 미륵상의 현실에 주목하며, 설치, 평면, 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신작을 선보인다.
이끼바위쿠르르는 <거꾸로 사는 돌>(2024)이라는 제목을 가진 2채널 영상과 조각 작품을 공개한다. 이들은 미륵 조각상을 찾아다니며 발견했던 망가진 축사 옆이나 태양광으로 가득 찬 폐교와 같은 풍경들을 원경으로 포착하며 장면을 산수화처럼 표현한다. 작품은 현실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풍경에 녹아든 불상의 모습에서 미륵이 지닌 생동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더불어 작가는 임실의 논밭 위에서 만난 석상을 본떠 제작한 설치 작품 <거꾸로 사는 돌>을 전시장 한 가운데 위치시킨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시장 전체를 “과거를 살아내는 돌”이 있는 풍경으로 변모시키기를 시도한다.
<더듬기>(2024) 작업은 차갑고 단단한 석상을 숯으로 더듬으며 작가들이 미륵을 만지고 느꼈던 경험을 전달한다. 이는 소외된 풍경과 조각에 대한 감각적 접속을 불러일으키며, 일상에서 잊힌 미술의 존재감을 재발견하게 한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들의 산>(2024)을 통해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괴상하게 생긴 돌들이 만들어 낸 풍경을 전시장으로 가져온다. 거대한 산속에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정경을 이루는 기암과 괴석을 지점토와 먹을 활용해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영상 <쓰레기와의 춤>(2024)은 먼지와 쓰레기들이 폐허 속에서 춤추는 모습을 담아낸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먼지 속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존재하는 새로운 관계를 환기시키며, 우리에게 함께 존재함의 의미를 묻는다. 그리고 전시의 시작과 끝에서 만날 수 있는 <부처님 하이파이브>(2024)는 관람객이 ‘거꾸로 사는 돌’로 진입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이끼바위쿠르르는 미륵이 이야기하는 미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품으며 ‘거꾸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아트선재센터는 이끼바위쿠르르의 《거꾸로 사는 돌》을 통해 우리가 속한 일상의 풍경을 돌아보며, 버려진 돌과 버려진 풍경 속에서 “과거를 살아내는” 미륵이 주는 위로와 희망을 찾기를 기대한다.
■ 작가 소개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
이끼바위쿠르르는 고결, 김중원, 조지은으로 구성된 시각 연구 밴드다. 그룹의 이름은 이끼가 덮인 바위를 뜻하는 ‘이끼바위’와 의성어 ‘쿠르르’를 의미한다. 땅과 공기 사이의 좁은 경계에서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이끼의 모습을 작업의 태도에 반영한다. 이끼바위쿠르르는 농부, 해녀, 학자 등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그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식물, 자연현상, 인류, 생태학을 배운다. 그리고 작가는 자생하는 동시에 경계를 넓혀가며 생태의 일부가 되어가는 열대와 해초에 주목하고 그 현상에 관해 탐구한 바 있다. 참여한 주요 단체전으로는 《그림자의 형상들》(비엔나 제체시온, 2024), 《Breath(e): Toward Climate and Social Justice》(해머미술관, 2024), 《연안의 기록들》 (영국문화원, 한국국제교류재단, 2024), 《 Sending Love during Uncertain Time》(엠플러스, 2024), 《노란기억》(식민지역사박물관, 2023), 《이것 역시 지도》(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23),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제14회 광주비엔날레, 2023), 《Lumbung》(카셀도큐멘타 15, 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