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전쟁 긴 역사, 그윈 다이어의 통찰
[서울시티=김청월 기자] 역사는 승리자들에 의해 쓰인다고들 하지만, 그윈 다이어(Gwynne Dyer)가 쓴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전쟁사는 단순히 전쟁의 승패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전쟁이라는 인간 행위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다룬다. 전쟁은 단순히 전략적 충돌이나 정치적 대립의 결과물이 아니다. 다이어는 이를 인류의 집단적 본능과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하며, 전쟁이 인간의 문화와 본질적으로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다이어는 인간 사회에서 전쟁이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를 탐구한다. 초기 인류가 생존을 위해 경쟁하던 시절부터, 전쟁은 자원 확보와 지배 구조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은 단순한 폭력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조직화된 힘의 극단적 표현이다. 책의 첫 장에서 다이어는 “전쟁은 개인의 폭력적 충동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수준으로 확대된 결과물”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현대 전쟁까지 연결 짓는다.
다이어는 특히 전쟁을 단순한 정치적 도구로 보았던 클라우제비츠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그는 전쟁이 단지 정치의 연장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 본성과 집단 심리의 일환임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군사적 전략이 아닌,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가치가 어떻게 전쟁을 가능하게 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통찰이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전쟁의 진화에 대한 서술이다. 다이어는 원시 부족 간의 충돌에서부터 고대 제국의 정복, 그리고 현대의 대규모 전쟁까지 전쟁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설명한다. 기술과 조직의 발전은 전쟁을 더욱 파괴적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인류는 점점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파괴하는 법을 익혔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이러한 파괴가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현대 전쟁에 대한 다이어의 분석은 더욱 섬뜩하다. 핵무기의 등장은 전쟁의 본질을 바꾸었다. 단순한 승패를 넘어서,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이어는 이를 두고 “전쟁의 종말이 인간 문명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며, 핵 억제와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윈 다이어는 단순히 전쟁의 역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평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깊이 탐구한다. 특히 그는 전쟁을 멈추기 위한 인간의 집단적 노력에 대해 낙관적인 동시에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국제연합(UN)과 같은 기구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여전히 평화 구축의 가장 큰 장애물임을 지적한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전쟁이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전쟁은 인간의 창조물이며, 따라서 평화 또한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집단적 노력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이는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성찰이다.
다이어의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전쟁사는 독자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전쟁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전쟁은 과연 피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일부인가? 아니면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가? 그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결국 이 책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통해 인류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전쟁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어리석음뿐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가능성과 희망도 발견할 수 있다. 다이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쟁을 이해하는 것은 곧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