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여성들, 그들이 만든 세상의 무게
[서울시티=김청월 기자] 케이트 제르니케의 『숨겨진 여성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의 이면에서 활약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과학, 기술, 예술, 정치, 그리고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종종 그들의 이름은 역사의 기록에서 생략되거나 가려졌다. 이 책은 그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고, 각 분야에 기여했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현대 사회가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성별에 따른 편견과 차별을 되돌아보게 하며,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노력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과거의 많은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았다. 역사적 기록은 대부분 남성의 관점에서 쓰였고, 여성의 역할은 가사와 육아에 국한되었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평가절하되기 일쑤였다. 『숨겨진 여성들』은 특히 20세기 중반,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두각을 나타낸 여성들을 집중 조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NASA의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흑인 여성 수학자들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히든 피겨스』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주 개발 역사에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제르니케는 이 책에서 그러한 무명의 여성들이 이루어낸 성과들을 발굴해 내며, 그들이 왜 지워졌는지를 분석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성의 업적은 남성의 것보다 덜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 과학자들의 비율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그조차도 남성과의 공동 수상이 대부분이다. 이는 여성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편견과 시스템적 문제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여성들이 그들의 재능과 열정으로 벽을 넘어섰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여전히 바뀌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강조한다. 지금까지는 ‘개별적인 노력’이 여성들의 성공을 가능케 했다면, 이제는 시스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유리천장을 부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성평등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는 문화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여성의 ‘희생’을 기억하자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숨겨진 여성들』은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를 제시한다. 여성의 역사는 남성의 역사와 대립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풍부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책은 역설한다.
『숨겨진 여성들』을 읽으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점은, 여성의 역사를 되새기는 일이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과거에 묻힌 이름들을 끌어올려 그들이 이룬 성과를 빛나게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히 ‘여성이었기 때문에 억압받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들은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시대를 움직였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유산을 이어받아,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때다.
케이트 제르니케의 『숨겨진 여성들』은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여성의 역사를 재조명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그들은 숨겨져 있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행동으로 변화의 불씨를 지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