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설, 고난의 시대 음악으로 희망을 전하다
[서울시티=김청월 기자] 1980년 12월 8일, 한국 가요계의 거목이자 대중음악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간 백년설이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이 아닌, 한 시대의 상징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백년설의 삶과 음악은 단순히 가수로서의 성공을 넘어, 암울했던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었다.
백년설은 1914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으며 성장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을 배우며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1930년대 후반에 발표한 ‘나그네 설움’으로 단숨에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나그네 설움’은 당시 조선인들이 겪었던 상실감과 고달픈 삶을 대변하는 노래로, 일제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백년설의 목소리는 단순히 노래에 머물지 않고,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의 노래는 기교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소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1945년 광복 이후, 백년설은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며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노래했다. 하지만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은 그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고향이 북한에 위치하면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그네’가 되었고, 이는 그의 노래와 삶에 더욱 깊은 애수를 드리웠다.
백년설은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며 대중가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50~60년대에도 그는 ‘번지 없는 주막’ 등 주옥같은 곡을 발표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현대적 음악의 대두와 함께 점차 그의 음악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잊혀갔다. 그럼에도 그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고, 무대 뒤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백년설의 음악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의 노래는 한 시대의 고난과 애환을 담은 ‘역사의 기록’이며, 동시에 지금도 우리에게 위로와 공감을 준다. ‘나그네 설움’의 애잔한 멜로디는 여전히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으며, 그의 음악적 열정은 오늘날에도 많은 가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백년설의 삶은 단순히 가수로서의 성공담을 넘어,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다한 삶이었다. 그는 암울한 시기에 음악으로 희망을 전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1980년 12월 8일, 백년설이 세상을 떠난 그날, 한국 대중음악사에 하나의 별이 졌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울려 퍼지고 있으며, 그의 목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백년설의 음악은 단순히 과거의 것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다.
백년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음악과 삶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다. ‘나그네 설움’의 선율 속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시대를 초월한 울림으로 우리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이는 그가 단순히 한 시대의 가수를 넘어, 한국 대중음악사의 영원한 거목으로 남게 된 이유일 것이다.
나그네 설움 ㅣ 백년설 (1939)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 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이 한이 없어라
타관땅 밟아서 돈지 십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 속엔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나그네 설움’은 백년설의 대표곡으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곡입이다. 이 노래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 시대, 고난의 시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상실감과 슬픔을 표현한 곡이다. "나그네"라는 말은 당시 조선인들이 겪었던 고통과 외로움을 상징하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상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단순한 개인의 슬픔을 넘어서,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곡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백년설의 감성적이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이 곡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번지 없는 주막 ㅣ 백년설 (1959)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이 밤도 애절구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자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아주까리 초롱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애절 구려
귀밑머리 쓰다 듬어
맹서는 길어도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이 곡은 백년설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1950~60년대 한국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곡이다. ‘번지 없는 주막’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외로움과 아픔,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그린 곡으로, 제목 자체가 주막이 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번지 없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노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을 강조한다. 백년설의 진심이 담긴 표현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명곡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