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백 칼럼] 월계관으로 가린 일장기,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금메달의 영웅 손기정

2024-11-15     신송백 칼럼니스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 모습.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운데)와 동메달 수상자인 남승룡 선수(왼쪽), 은메달리스트 에른스트 하퍼 영국 선수(오른쪽) (사진=손기정 기념관)

  2002년 11월 15일, 대한민국 육상 선수 손기정 선수가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죽음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의 퇴장이었다.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삶과 그가 남긴 발자취는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며 세계에 대한민국의 저력을 알린 인물이다. 그러나 이 금메달은 단순한 스포츠의 승리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그는 일장기 아래에서조차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싸웠다.

1936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은 일본 국적 선수로 출전해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조국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붙어 있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식민지 지배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손기정은 시상대에 올라 일장기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어야 했지만, 그의 얼굴은 웃음이 아닌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억울한 심정으로 승리를 기뻐할 수 없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은 그를 "조선의 아들"로 칭송했지만, 국제적으로는 일본의 승리로 포장되었다. 특히, 그 유명한 우승 사진에서 손기정의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가리고 보도한 《동아일보》 사건은 일제의 분노를 사며 탄압을 받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가린 월계관 사진은 당시 조선 민중들에게 작은 저항의 불씨가 되었고, 일제에 대한 강렬한 항거의 상징으로 남았다.

손기정의 일장기를 가린 사진은 단순한 스포츠 기록을 넘어서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메달을 따낸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억압받는 식민지 백성들의 숨겨진 울분과 자존심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손기정을 "일본 선수"로 소개하며 자신들의 국력과 민족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했다. 하지만 손기정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조선의 정체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 순간은 일제의 억압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 의지를 드러낸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1936년 올림픽 당시 손기정의 시상식 사진을 조선 민중이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생각해보자. 그는 일본 유니폼을 입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 얼굴에는 비통함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손기정의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지우고 싶었던 것은 단지 기자들만의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모든 조선인들의 바람이었고, 일제 치하에서 짓밟힌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고자 하는 소망이었다.

손기정의 금메달은 단순히 기록의 승리가 아닌, 식민지 조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해방을 맞이하고 대한민국이 독립국으로서 다시금 국제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을 때, 손기정은 후배들을 양성하며 한국 육상계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했으며,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날 한국 스포츠의 기틀이 되었다.

특히, 손기정은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달하면서도 결코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한국 육상 발전을 위해 힘썼고, 한국 체육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의 헌신 덕분에 오늘날 한국은 마라톤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손기정 선수의 별세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는 단순히 메달리스트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암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조국의 자존심을 지켰던 영웅이었다. 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스포츠를 통해 국경을 초월한 평화와 우정의 가치를 전파하며 인류애를 실천한 그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손기정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는 그가 단순히 뛰어난 선수였던 것뿐만 아니라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참된 애국자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손기정 선수의 발자취는 대한민국 육상의 역사 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의 금메달은 여전히 빛나고 있으며, 그 빛은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일깨워준다. 손기정, 그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정신과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