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칼럼니스트
김선희 칼럼니스트

원래 터널시야(Tunnel vision)는 의학적 용어다. 일반적으로 운전자들이 터널에 들어가면 빛이 나오는 출구만 보고 달린다. 그때 시야가 좁아져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게 된다. 신체 상태의 이상으로도 생기지만 공포나 스트레스 등에서도 나타난다. 일련의 사건으로 겪게 되는 심리적인 기제로 인해 주의력과 정보처리능력 등과 같이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우리가 어떤 일에 극도로 집중할 때 눈 앞에 것만 집중하느라 주변이 잘 안 보이는 것과 같다. 주로 심리적 기제에서 비유적으로 많이 사용되며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한 가지 문제에 고착되면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터널 속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면 주변은 다 어둡고 터널 끝 밝은 원통의 동그라미만 보인다. 동그라미 밖을 인지할 수 없기에 판단력이 떨어지는데 심리학에서는 ‘터널 시야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한가지 문제에 고착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내린 결론에 타당한 것만 증거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그 외에 다른 것은 무시한다. 그러니 자신의 의견만 옳고 타인의 말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때로는 특정한 상황에 외골수처럼 집착하거나 몰입한다. 실질적으로 주변에 존재하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보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상황이 생긴다. 특히 자살사고가 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터널시야는 자살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에 다른 사고를 하지 못한다. 터널 속의 운전자가 구멍 끝 빛만이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들은 죽음만이 자신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 믿는다. 

직장생활에서 싫어하는 동료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다면 그 동료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무시한다. 일을 잘함에도 불구하고 미워하거나 공격하는 행동이 보인다.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데이터는 한정적이다. 한꺼번에 다룰 수 없기에 문제에 대해 일부만 선택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어떤 상황에서 흥분할 경우 눈에 보이는게 없다는 말이다. 선택적으로 몰입하다 보니 주의력과 정보처리 능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어떠한 상황에 처했을 때 주변의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해야 하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느라 무의식적으로 놓치게 된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다 보면 오히려 더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터널시야에서 벗어나면 자연적으로 시야가 넓어진다

터널시야에 빠지면 독불장군이나 외골수처럼 ‘나는 옳고 너는 옳지 않다’는 판단으로 인해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스스로 고립시키게 된다. 어느 한 연설가가 대중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고 하자. 그 사람 중에 거슬리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연설가는 계속 그 사람만 신경 쓰고 유독 그 사람만 보게 된다면 연설을 아마 망치게 될 것이다. 좁은 시야로 다른 사람들을 살피지 못하게 된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터널시야 잘 빠지는데 그 상황에 항상 머물러 있기에 문제가 된다. 우울한 감정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 주변도 잘 보이지 않고 문제해결도 잘 안된다. 터널 끝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에만 온 에너지가 집중된다. 이때 우리의 뇌는 적응적인 인지활동을 멈춰버린다. 어느 프로그램의 이름처럼 ‘말하는 대로’ 인간의 행동은 움직인다. 우리는 말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말하는 행동을 보인다. 부정적인 신념을 갖게 되면 그렇게 행동하고 그것을 애써 증명하려고 한다. 부정적으로 말하고 그대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 좁은 시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부적응적인 사고를 적응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말이다.
  
터널시야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고착된 생각은 객관적인 생각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 ‘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의 속담처럼 고착된 생각은 고인 물이다. 우리가 터널 시야의 함정에서 나오려면 감정이 심하게 북받쳐 올라올 때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는 판단력이 급속히 저하 되어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렵다. 또한 모든 상황에서의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플랜A, 플랜B, 플랜C 등 최대한 많은 것들을 그려봐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반대의 이야기도 경청해서 들어야 한다. 나와 의견이 달라도 귀담아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조건 배척하기 보다는 반대 의견 속에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도록 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기록해 둔다. 어떤 일에 결과를 ‘그럴 줄 알았다’는 예견착각의 ‘사후 확신 편향’ 줄이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기 고집에 빠져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좁은 시야로 고립된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시야를 넓혀 주변을 돌아보며 더불어서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 모두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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