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수 (사)전자·정보인협회 회장

스코틀랜드 왕국(Scotland 王國)은 브리튼 섬 북부를 점한 스코틀랜드에 세워진 왕국을 말한다. 스코틀랜드 역사는 로마시대부터 시작되며 로마 속주 브리태니어와 교섭을 가졌으나 7세기경에 픽트인·스콜틀랜드인·브리튼인·앵글로색슨인의 4나라가 성립하게 되었다. 9세기경에 스코틀랜드인은 픽트인국을 병합하여 알반국을 세우고 그 후에 브리튼인국을 멸하여 11세기 초에는 대체로 통일을 보았다.

그 후 잉글랜드에서 봉건국가가 확립돼감에 따라 스코틀랜드에서도 부족국가로부터 봉건국가로의 면모를 보이면서 잉글랜드왕국과의 분쟁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13세기말 이후에는 왕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와의 사이에도 왕권을 둘러싼 항쟁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1371년에 로버트 2세의 즉위로 스튜어트(Stuart)왕조가 열리었다.

그 후에도 프랑스와 화친을 맺어 잉글랜드와의 대립이 계속되고 특히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시대에는 종교문제까지 끼어 양국관계는 복잡하여졌다. 그러나 1603년에 엘리자베스(Elizabeth)여왕의 사망 후 제임스 6세(James Ⅵ)가 외척인 까닭으로 잉글랜드왕을 겸함으로써 잉글랜드에 있어서의 스튜어트 왕조가 열리게 되었다. 결국 양국은 동군연합(同君聯合)의 형식을 취하였다.

그 후 청교도혁명·왕정복고·명예혁명 등의 격동기를 거쳐 안(Anne)여왕의 즉위와 동시에 합동의 기운이 높아져 1707년에 합동법이 의회를 통과하였다. 그래서 양 왕국은 통일하여 대브리튼왕국을 형성하고 스코틀랜드의 역사는 잉글랜드의 그것과 합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인(Scotland 人)은 스코치(Scotch), 스코틀랜드의 주민을 말하는데, 본래의 스코틀랜드인은 켈트(Celt)계통으로 일찍이 동지(同地) 북서부에 정착하여 5세기 이후 새로 들어온 앵글로 색슨인과 대항하였다. 그러나 1707년에 합동법(合同法)에 의하여,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통일하여 대 브리튼(Great Britain)왕국을 형성하였다. 언어는 원래 켈트어이며 일찍이 영어화 했으나 와음(訛音:잘못 전하여진 글자의 음)이 심하였다.

스코틀랜드어(Scotland 語)는 켈트어(Celt 語)의 하나이다. 15세기경에 스코틀랜드에 침입한 아일랜드인이 전한 것이다. 그 후 점차 발달하여 북부지방 전체에 행하여 졌었는데, 오늘날에는 영어에 압도되어 겨우 하일랜드(Highland)지방에서 사용될 뿐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의 1975년 신설된 자치구인데 주요도시는 밴프(Banff)가 있다.

하일란즈(the Highlands)는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의 약 5분의 3을 차지하는 산악 지방, 산지를 말한다. 결정편암류·편마암·화강암으로 이루어 졌고, 칼레도니아 조산운동(造山運動)에 의한 오래된 습곡산지의 일부이다. 남쪽의 저지와는 중앙 지구대 북부의 북동~남서 방향 단층선으로 구획되어 있다.

아리만(灣)과 론만을 잇는 네스호(Ness湖)를 포함한 구조곡(構造谷)에 의하여 북서 하일랜드와 남동의 그램피아 산지로 나누어진다. 동쪽 북해안의 연하여 있는 평지는 우량이 적어 곡식도 재배되나 다른 곳은 우량이 매우 많으며 목양(牧羊:양을 치거나 놓아기름)이 행해진다. 소수의 주민이 거주한다.

스코트랜드(Scotland)는 영국의 한 지방이다.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 섬의 북서부를 점하며 남쪽은 체비오트 연구(Cheviot連丘)에 의하여 잉글랜드와 접하고, 동쪽은 북해와, 서쪽과 북쪽은 대서양에 면하여 있다. 근처에 있는 섬무리를 함께 포함하여 영국 본토 총면적에 4할 이상을 차지한다.

남쪽의 고지는 구릉이 기복(起伏)하여 있고 평지가 극히 적지마는 중부지역은 비옥한 저지로서 농경에 적합하다. 북서부는 고원으로서 그램피아(Grampia) 산맥 속에 영국 제일의 고봉인 벤네비스산(Ben Nevis山 ;1,343m)이 솟아 있다. 특히 그 북서부에는 협호(峽湖)·협만(峽灣) 등이 매우 많고 그것들이 구릉사이에서 서로 엉키어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나타낸다.

해변은 굴곡이 심하며, 협만은 많은 곳으로 동쪽의 머레이(Moray), 서쪽의 론(Lorne)·클라이드(Clyde) 등이 있으며, 칼레도니아(Caledonia)운하·포스(Forth)클라이드 운하 등이 이것들을 연결해 횡단수로를 이루고 있다. 스코틀랜드에 속하고 있는 섬무리의 총수는 788개이며, 그 중에서 오크니(Orkneys)·세틀란드(Shetlands)·헤브리리즈(Hebrides) 등의 섬이 유명하다.

맥류(麥類)·감자 등의 농산물이 산출되며, 목축업이 성하여 소·말·양의 종류가 많다. 근해에서는 대구·청어 등의 수산물이 많이 잡히며 중앙저지에서는 철·석탄을 생산하고, 과거에는 클라이드강(江)의 유역에서 제철·조선·기계제작업 등이 발달하였는데, 글래스고(Glasgow)가 그 중심지를 이른다.

주민의 대부분은 튜톤족(Teuton族)의 영국이며, 종교는 신교(新敎)이고, 소수의 켈트(Celt)인이 산간벽지에서 산다. 오랫동안 잉글랜드와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나, 18세기 초두에 합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주도는 에든버러(Edinburgh), 면적은 78,775㎢이다.

스코틀랜드야드(Scotland Yard)는 영국 런던에 있는 수도 경시청의 별명이다. 1829년 창설부터 1890년까지 스코틀랜드 왕궁 자리가 있었던 것이 이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영국 유일의 국가경찰이다. 런던 및 주변지구의 경찰업무를 담당하는 이외에, 전국의 범죄기록, 자료 등을 보관하고, 자치제 경찰의 요청으로 미제의 어려운 사건의 수사도 담당한다.

스코틀랜드학파(Scotland 學派)는 18~19세기에서 영국에 있어서의 소위 상식학파이다. 대표자로서는 글래스고(Glasgow)대학교수, 에든버러(Edinburgh)대학교수 및 그 제자들이며,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형성 발전 되었는데, 그 처음 주창자는 18세기 영국의 근대시민적 인간학으로서의 감정적 인간학, 즉 도덕철학이나 미학(美學)의 형태로 발전하여 온 감정적 인간학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재론적 입장을 취하는 그들에 의하면, 우리들의 감각적 지각표상(知覺表象)은 우리들의 지각표상과는 독립한 외적 세계에 그 대상이 실재(實在)한다고 한다. 이러한 신념 내지 판단과 직접적으로 결부되고 있으며, 상식의 여러 원리를 시대와 함께 변하는 ‘우연적 진리’와 영원한 진리인 ‘필연적 진리’로 나누었다.

근래에 와서 스코틀랜드는 영국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2014년 9월 자체 독립투표를 실시했으나, 일단은 간신히 부결되었다(반대 55.3%, 찬성 44.7%). 경제적인 자립도가 줄곧 문제가 되어 왔으나, 1970년에 북해에서 유전을 발견한 것이 독립의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거기다가 1997년에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스코틀랜드 자치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하나의 독립국가가 되려면 민족(인종/인구), 언어와 문화/종교가 충족되어야 한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에는 영국 전체인구(6,410만명)의 8%가 분리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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