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변화를 위한 체험실천(노숙체험, 한 달 월급 나누어주기 등)

김완섭 목사

기독교 본래의 신앙이 회복되어야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목회자가 있다. 언론에 큰 이슈로 등장하는 대형교회와 지도자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버린 기독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의 신앙에서 교회 밖, 곧 삶 속에서의 신앙으로 회복될 때 기독교가 살아날 뿐 아니라 세상도 훨씬 밝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물론 수십 년 전부터 이미 많이 제시되어 있고, 의식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기독교인들의 안타까운 외침은 신앙현실 가운데 곧 묻혀버리고, 기독교 신앙의 현실에 대한 건실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회복을 위한 강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큰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이유는 그런 주장들을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던 한 목회자가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에게 강력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직접 몸으로 실천하고 있어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김완섭 목사이다. 그는 단돈 5,000원만 들고 서울역으로 나가 4박5일 동안 골목길에서 노숙하였으며, 예수가 졌던 십자가와 비슷한 크기(3.6m)와 무게(40-45kg)의 십자가를 만들어 2km씩 여러 번 지고 행진하였으며, 4주 동안 모든 세상소식을 끊고 복음서만 8회 반복하여 읽었고, 한 달 월급 300만 원을 몽땅 털어서 동네의 어려운 이웃 여섯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나누기도 했다.

 

목사님이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내용들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십시오.

우선 4박5일 노숙체험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의 모든 것, 잠자는 것과 먹는 것까지 포기하고 하나님께 며칠간이라도 완전히 맡겨보고자 시도한 일입니다. 왕복 지하철비 5,000원만 들고 서울역에 나가서 5일 동안 지내는데 첫날은 무료급식소를 찾지 못해서 굶었고, 둘째 날 뒷골목 잠자리가 너무 불편하여 일찍 깨는 바람에 새벽무료급식소를 찾게 되어 겨우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죠. 믹스 커피 한 잔 마실 돈 100원이 없어서 서러움에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골목 처마 밑이 아니라 건물 안 계단에서라도 잠자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지만 결국 노천에서 나흘 동안 잠을 잤죠.

목사라는 체면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먹는 것과 잠자리 찾는 데 시간 다 보내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정말 보잘것없는 하찮은 인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더 처절하게 깨달았죠. 생존을 위한 몸부림도 굉장히 귀중한 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죠.

 

목요일에 어느 전도자 분이 만원을 주시는데, 그 느낌은 1,000만원을 현금으로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갈비탕 한 그릇 사먹으면 없어질 돈이지만 참새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맛보았습니다. 몸으로 부딪치는 거기에서 하나님은 아주 강력한 말씀들을 계속 주십니다. 결국 하나님과 벌거벗고 제대로 대면하는 영광을 누린 거죠. 하나님과 함께 하니까 하루를 굶어도 거기가 천국이더라구요. 세상에서 쌓아올린 것이 포기가 되어야 하나님을 제대로 만납니다. 목에 힘이 빠질 때 하나님이 진짜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다니신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같은 곳에 가도 십자가 지는 행사가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에 성지순례라고 해서 가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에서 나무십자가를 교대로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는 체험들을 많이 하죠. 그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저는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실제로 지셨을 법한 크기와 무게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 봄으로써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면 어떻게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료를 찾아보니까 길이는 나와 있지 않지만 현재 구입할 수 있는 목재가 3m60cm 정도 되니까 그것을 통째로 사용하면 됩니다. 그래서 구리에 있는 목재소에서 구입하여 십자가를 직접 제작했습니다. 십자가의 전체 무게는 40-45kg 정도 되지만 한 쪽은 땅에 끌리기 때문에 어깨에 오는 무게는 대략 25-27kg 내외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체력이 과연 이것을 지고 갈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동네에서 2km 정도를 걸어 다녔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자주 쉬었는데 나중에 세어보니까 무려 29번을 쉬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끙끙 앓았었죠. 그러기를 세 번을 했습니다.

 

 

목사님, 연세가 있으신데 어떻게 5일 동안 노숙하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다니셨습니까?

올해 우리 나이로 67세인데,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젊은 나이입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와서는 따로 만들어 세워놓은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보다 십자가에 매달리니까 진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내 죄의 무게와 내 인생의 아픔과 괴로움의 무게가 고스란히 저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필리핀 같은 데서는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전국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몸을 피 흘리기까지 괴롭히며 실제로 손바닥에 못을 박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미신적인 요소가 강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공로가 됩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결코 공로가 될 수 없으며 예수님께 더 가까지 다가가고 예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함으로써 이 땅에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도전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인이라면 한 번쯤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만큼 무겁고 괴로우니까 비로소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을 얻거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십자가 지는 체험이 관계를 더욱 밀착되게 하고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네. 기독교인들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세상소식 끊는다는 것은 또 어떤 일인가요?

현대사회는 정보가 너무 많습니다. 기독교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인데, 세상 소식들이 너무 범람하니까 깊이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대할 기회를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다양한 정보들 때문에 말씀을 보기는 보아도 어느 것이 옳은지 분별하기가 어렵고 또 그 이전에 차분하게 말씀에 자신을 비쳐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데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경험을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4주 동안 신문, TV, 인터넷, SNS 등 일체의 외부로 통하는 길을 차단해본 것입니다.

처음에 열흘 정도는 정말 답답했습니다. 답답한 가운데에서도 매일 성경 사복음서를 3시간씩 집중하여 읽고 정리했습니다. 2주 정도 지나가면서 차츰 적응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소식에 관심도 사라졌고 성경읽기가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듣고 싶은 부분만 읽던 일이 이제는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필요에 의해 자기중심적으로 읽던 성경이 이제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막 고민이 되고 갈등이 오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15년 동안 목회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열심히 한 것이 괴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기독교가 예수님의 말씀과 관계없는 모습들이 너무 많이 보이니까요.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데 내가 여태 뭘 알고 있었던 거지 하는 생각들이 들어오는 거예요. 사실 이렇게 되어야 진짜 성경을 읽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간다는 말들은 많이 하는데 자기를 객관화시키지 못한 거예요. 사실 이런 것들이 오늘의 기독교가 비판을 받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인 거죠. 세상의 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전혀 아무 소리도 안 들리니까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조용해질수록 예수님의 말씀은 크고 세밀하고 강력하게 들려지는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소중한 깨달음이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월급을 나눈다는 이야기는 또 어떤 내용인가요?  한 달 월급을 고스란히 나누어주신다는 이야기인가요?

말 그대로 1년에 한 번, 한 달 월급을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나누어주는 거죠. 예수님의 이름으로요. 사실 여기에서부터 이제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노숙을 해보거나 십자가를 져보거나 세상의 온갖 소리를 다 차단하고 성경만 읽는 일들은 전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방법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회복되면 세상 속에 들어가서 참다운 신앙인으로 사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잘 하는 것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삶 속에서 어떻게 신앙인의 삶의 모범을 보이느냐를 가지고 판단하는 거죠.

그 첫 관문이 무엇입니까? 이웃사랑입니다. 이웃사랑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자기 소유를 어려운 분들과 나누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꼽았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 소유를 나누지 못하면 이웃사랑은 어쩌면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월 소득보다 큰 금액이지만 300만 원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모아 둔 돈이 없으니까 빌려서 매월 조금씩 갚기로 하고 마련했습니다. 제가 직접 동네에서 어려운 분들을 찾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아서 주민 센터에서 추천을 받아 그 집을 찾아가서 전달해드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돈을 받는 분들의 반응에 따라 흔들리는 제 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 보람을 느끼려고 한 부분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여기에서 귀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성경을 다시 자세히 보니까 나눔 자체가 아니라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초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눔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따르는 데 초점이 맞추어지면 가진 것이 없어지니까 아주 홀가분하게 되는 거죠. 나누면서 또 한 가지 제가 느낀 것이 그 나눔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나누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내 돈으로 베푼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은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그 사람 입장에서 느낀 마음을 가지고 돕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내가 나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그 나눔은 진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웃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 깊은 이야기이군요. 그러면 목사님 이런 내용들을 책으로 내셨다면서요?

원래 한 권씩 낼 생각은 없었고 전체를 통틀어서 내려고 했었는데 체험을 시도하면서 글이 그냥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길거리에서 예수님 만나기’, ‘성경 속에 숨겨진 보석캐기’, ‘구제하는 신앙인이 참 아름답다’ 이렇게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한 권 제목은 ‘자기중심신앙을 벗어던지고 하나님 편에 바짝 붙어라’인데 그냥 ‘하나님 편에 바짝 붙어라’를 찾으면 됩니다. 이 책은 체험은 아니고 오늘날 기독교에 만연한 인본주의, 기복주의, 번영주의, 종교주의(율법주의), 은사주의와 같은 기독교 본질에서 벗어난 세속주의에 어떻게 대항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개념서와 같은 내용입니다.

사실 목회나 신학이나 아무튼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책은 아니고 모두 본질로 돌아가서 예수께서 원래 가르치셨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독교 신앙인다운 모습을 되찾아서 그런 삶이 목표가 되고 삶의 모델로 삼자는 그런 책들입니다. 우리나라도 초기에는 기독교가 세상에 참 좋은 일들을 많이 했고 사회를 이끌어갔었는데 어느 새 사회가 발전하면서 복음의 본질이 흐려져 버렸잖습니까? 이제 다시 원형의 기독교 신앙을 회복함으로써 세상을 밝힐 뿐 아니라 부패하지 못하게 만들고 국민들의 삶 가운에 맛을 내주는 그런 기독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독교가 본질을 회복하면 세상을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주제를 가지고 꾸준하게 활동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목사님, 앞으로 활동할 내용 중에 구체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있을까요?

물론 이 네 가지 체험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10여 가지 체험할 것이 남았습니다. 우선적으로는 ‘죄수소원 들어주기’가 있습니다. 담안에 갇혀 있는 사람 중에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진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의 편지나 소식을 갇힌 분의 마음을 품고 제가 직접 들고 찾아가서 전달해주는 역할입니다. 예수님께서 갇힌 이를 돌보라고 하셨으니까요. ‘소금일인시위’라는 것은 더 이상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부정부패를 거절하고 기독교인들은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일인 시위 형태로 거리운동을 펼치는 일입니다. 이 때는 소금을 직접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열두 형제 사랑하기’는 교회 안에서 별로 교류가 없는 사람과 식사 나눔을 통하여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형제사랑의 참뜻을 헤아리고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구상한 것이 있는데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예수체험 훈련을 펼쳐나가려고 합니다.

 

끝으로 한국교회나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으신 말씀들이 있으신지요?

한국교회가 국민들이 생각하는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나친 성장 위주의 국가적 분위기에 교회마저 따라간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뜻있는 분들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모습들을 회복하고 개혁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논란이 되는 경우보다는 훨씬 많은 교회들이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이웃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전체의 분위기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기독교 내부에서는 자정 노력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거나 자기 멋대로 적용하거나 욕심에 눈이 어두워 말씀을 피해갔던 우리들의 공동책임입니다. 나 혼자 제대로 믿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이제는 나도 신앙의 변화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만 하는 시점까지 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를 대하는 시선들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깨어있는 여러 지도자들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까지 아까워하지 않으셨는데 우리는 너무 이 땅의 것들에 대한 애착이 너무 많습니다. 거의 다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에 좋은 귀감이 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더욱 헌신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당장 뚜렷한 결과를 보여드릴 수는 없겠지만 10년, 20년 지나가면서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교회가 되어 있을 것을 약속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기독교신앙회복연구소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기독교개혁운동을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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