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배낭에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관악산, 아차산 등 서울 곳곳의 산을 오르는 시민들. 평소에 만나기 어려웠던 꽃과 나무, 특히 정상에서 마주친 절경은 주중에 지쳤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그런데 단순히 등산코스로만 생각했던 서울의 산에 우리가 몰랐던 역사가 숨어있다면 어떨까?

서울의 남쪽에 위치한 관악산은 서울시민에게 사랑받는 등산 명소지만 사실 관악산 자락에 수많은 문화유적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사당역에서 관악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오늘날 남서울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 ‘구 벨기에 영사관’이, 낙성대역 쪽으로 가다 보면 ‘강감찬 장군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서울시내가 한눈에 잘 내려다보이는 등산코스이자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로 유명한 ‘아차산’은 서울을 굳건하게 지키는 산성 역할을 했다.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점 때문에 고구려인들은 아차산을 전략적 기지로 삼아 산성보다 작은 성을 의미하는 ‘보루’를 쌓고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했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역사가 6명과 서울시민들이 서울의 외사산 8곳을 직접 답사한 경험을 담은 <서울역사답사기2-관악산과 아차산일대->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역사가가 현장에서 했던 강의, 시민에게 받았던 질문, 자신의 소회 등이 담겨있다.

서울역사답사기는 역사가와 서울시민이 10년간 서울 곳곳을 돌아보고 매년 답사기를 발간하는 서울역사편찬원의 대장정 프로젝트다. 이번책은 작년 북한산과 도봉산을 주제로 발간한 <서울역사답사기1>에 이어 두 번째 책이다.

서울역사편찬원은 2004년부터 매년 시민과 역사가가 함께 하는 답사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17년부터 전년도에 답사한 내용을 책으로 발간하고 있다. 2천년의 시간 속에 포함된 ‘자연적 요소(산과 강)+인문적 요소(수도와 길)+사람의 이야기’를 복합적으로 고려하며 외사산, 내사산, 한강, 수도, 길, 근현대, 인물 등을 주제로 오늘날 서울 일대를 다양하게 답사한다.

이 책은 ‘서울에 어떤 문화유산이 있는가?’가 아니라 ‘서울은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는 건축사나 미술사적으로 건물과 문화재를 보는 것이 아닌 스토리, 사람, 지역의 역사란 관점으로 전환해 역사학적 관점에서 답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역사답사기2 -관악산과 아차산 일대->는 관악산, 대모산, 호암산, 궁산, 아차산, 망우산, 수락산, 불암산 일대의 8개 답사코스를 소개한다.

관악산과 대모산 자락에서는 전근대 여러 학자들과 조선시대 왕실 묘역들이 존재한다. 관악산엔 태종의 둘째아들 효령대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5대조인 이변(李邊) 등이 묻혀있다. 특히 대모산은 현존하는 왕손 묘역 가운데 가장 원형에 가까운 광평대군 묘역과 태종이 잠들어 있는 헌릉, 그리고 순조가 잠들어 있는 인릉 등이 있다.

관악산 자락에는 고려 멸망과 조선왕조의 건국에 따른 인물들의 처세사가 담겨있다. 덤으로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구 벨기에영사관, 미당 서정주 생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강감찬 생가 터 및 그를 모신 사당 안국사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강남의 뒷산 정도만 생각했던 대모산은 그 자체가 산성이었고, 불국사라는 절도 있다.

아차산과 호암산 일대는 서울로 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고대부터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았던 곳이다. 고구려와 신라시대 사람들이 산을 통해 서울을 지키고자 했던 시대적 소명을 엿볼 수 있다. 아차산엔 고구려인들이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쌓은 홍련봉 보루와 아차산 보루가 있다. 호암산은 신라인들이 곳곳에 성벽을 쌓은 흔적이 있지만 수풀 속에 가려져 있어 신경 쓰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수 있다.

이렇게 아차산과 호암산의 보루와 산성들을 신경 쓰고 살피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고민을 같이 느낄 수 있고 서울의 모습이 사뭇 달라 보인다. 망우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동묘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망우산에 조성된 망우공원묘지는 독립유공자 묘소 11기 등 한국근현대사를 수놓았던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조선시대 가장 많은 왕들이 잠들어 있는 동구릉으로 가기 위한 망우고개는 일제강점기 일반인들의 공동묘지가 되면서 1933년 ‘망우리 공동묘지’가 됐다. 우리가 망우리하면 공동묘지를 먼저 떠올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1990년대 후반 망우리묘지가 공원으로 변모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독립운동가, 문인, 예술가, 의사, 정치가 등 많은 이들의 생전모습과 약력을 알아볼 수 있도록 조성했다.

이 일대의 답사기를 집필한 필자는 “서울의 수많은 산들 중에 망우산만큼 사연 많고, 근현대사의 질곡을 한 몸에 안고 있는 산은 없다”고 하면서 망우산 둘레길을 따라 사색해 보기를 권한다. 서울과 의정부, 남양주에 걸쳐있는 수락산·불암산 일대에는 조선 후기 문신 박세당과 그 아들 박태보의 묘, 덕흥대원군 등 조선시대를 수놓았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수락산 자락의 박세당 고택에는 조선 후기 문신 박세당과 그 아들인 박태보의 묘, 박태보의 사당 노강서원, 그리고 박세당이 후학들을 교육했던 곳들과 정자들을 만날 수 있어 조선 후기 사대부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수락산과 연결돼 있는 불암산 자락에는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과 그의 신위를 모신 흥국사, 선조의 형인 하원군 묘가 있어 주목받지 않은 왕족의 삶을 공부해볼 수 있다.

이 책은 서울 신청사 지하 1층에 자리한 서울책방에서 구매할 수 있다. 서울시내 공공도서관이나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history.seoul.go.kr)에서 전자책(e-book)으로도 열람 가능하다. 정영준 서울역사편찬원 직무대행은 “관악산의 줄기를 따라 연결된 여러 산들, 아차산 자락을 따라 연결된 산들에 있는 수많은 유적들을 통해 시민들이 서울이 ‘역사도시’라는 것을 다시금 체험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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