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아 우리예술문화원 대표

▲ 손정아 대표

우리예술문화원 사랑방 소극장을 찾으니 70여 석 공연장과 다도 및 각종 한국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는 세미나 홀, 도자기와 공예 작품 갤러리로 이뤄진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매주 수요일 저녁, 소담하지만 알찬 개관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손정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국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다니던 절의 큰 스님이 저를 보고 ‘예술을 하지 않으면 비구니가 될 팔자’라고 하셨데요. 그때도 벌써 노래하고 춤추고, 장고 치는 흉내를 냈어요. 한 번도 다른 일에 눈 돌린 적이 없었습니다. 국립국악원 다니던 사촌언니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해서 열두 살 때 은사인 한영숙 선생님 수하로 들어갔습니다. 삶에서 고비나 후회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똑같은 삶을 다시 산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Q 사랑방 소극장에서 매주 공연을 하고 있나요?

조상들의 사랑방 문화를 재현한 공간이어서 참 뿌듯합니다. 지인들이 추천하고 물심양면 도와주셔서 여의도 한복판에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초청한 외국 손님들에게는 맞춤 공연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은 실정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더 빨리 전달되고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방 소극장도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계속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Q ‘아름다운나라, 무궁화 삼천리’ 는 어떤 공연인가요?

무궁화의 의미와 역사성 그리고 미래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뜻 깊은 작품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끈기, 인내, 근면의 무궁화가 피고지고 또 피고... 꽃말과도 같이 배달겨레의 표상, 끈질긴 우리 민족문화의 역사성이 담긴 무궁화를 국화로 정했습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국기가 법으로 제정되면서 국기 봉을 무궁화 꽃봉오리로 정하였고, 정부와 국회의 포장도 무궁화 도안으로 널리 사용하였으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란 노랫말이 애국가에 삽입된 이후 더욱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질곡을 넘어 여전히 우리 민족의 심성 속에 살아 숨 쉬는 무궁화에 함축된 민족정기와 의식을 선양하고 그 뜻을 기리며, 더불어 그 고귀한 정신을 더욱 깊이 되새기려는 의도로 "아름다운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기획하여 상설무대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영토문제, 역사문제를 비롯한 문화침탈 등 주변국의 끊임없는 도발과 민족 분단의 아픔이 계속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땅과 우리의 것을 제대로 찾아 회복하고 지켜나가고자 하는 노력과 열정이 많은 분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 울려 퍼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더 이상 '한의 민족' 이 아니라, '다이나믹 코리아'의 웅비하는 기상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길 희망합니다.

▲ 신현두 본지 발행인과 함께

Q 공연을 기획·준비하시면서 중점을 두시는 부분이 있다면?

공연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원형은 보존하되 옛날 방식의 악기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로 만들거나 협안하는 등 시대에 맞는 음악으로 변해야 합니다. 우리 춤은 사랑방과 기방에서 출발했습니다. 인간 본연 자체를 춤에 담아내기 때문에 더욱 우리들의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연은 문화의 차이, 다양한 것들이 공존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돼지머리를 상에 올리고 고사를 지내면 ‘대체 왜 절을 하느냐’라고 어리둥절해요. ‘한국식 세레머니’라고 이야기하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Q 그동안 수많은 공연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국악예술중고교를 다닐 때부터 국내는 물론 해외 공연도 많이 다녔습니다. 금방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공연은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광복 30주년 기념 공연을 할 때였습니다. 한영숙 박귀희 스승님과 <눈물 젖은 두만강>의 가수 김정구 선생님을 모시고 일본 관객 앞에서 공연했을 때,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관객도 과거를 생각하며 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일본인을 일깨워주는 데는 예술의 힘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광복 60주년 때도 일본 도쿄 우에노극장에서 한민족의 예술혼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Q 우리문화예술원에 비치된 많은 무궁화와 태극기가 인상적입니다.

저의 외조부님이 함경도 출신의 독립투사였습니다. 하얼빈에서 활동하고 세 차례 처형 고비를 넘기며 일제와 싸운 분인데 그 기록들을 어머니가 피난길에 모두 상실해 책으로 남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어머니는 늘 애석해하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외할아버지에 관한 우국충정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 나라 사랑에 대한 집착이 별나게 강했습니다. 또 국악이란 조상의 예술혼을 받들고 이어가는 것인데 나라와 민족을 상징하는 표상을 앞세우며 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극장을 아리랑으로 이름 붙이고 <민족의 혼, 아리랑의 소리를 찾아서>를 장기 공연 프로로 마련한 것도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를 일깨워 주기 위한 데서 비롯됩니다.

Q 우리문화예술원에는 골동품으로 귀하게 보이는 불상들을 비롯해 도자기와 가구, 고서화가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수집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어릴 때 우리 집을 찾아온 스님이 나를 보고 비구니가 안 되면 예술인이 되겠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비구니나 다를 게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불교에 깊이 마음을 두고 살아서인지 미국에 있을 때부터 골동품 가치가 있는 불상을 수집해왔고 고서화나 가구도 수시로 경매를 통해 매입해 수 백 년 보존해온 외국의 유물도 있습니다. 소장품이 모두 100점 넘는데 매우 귀중한 친구들이 되어 내 곁에 말없이 머물러 있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겁습니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연과 애국운동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저는 현재 소극장에서 공연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협소한 공간을 넘어 더욱 큰 무대에서 많은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현장감 있는 무대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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