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령을 위해 해마다 대제를 올리는 달전사 주지 원명 불교의례, 수륙재의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다
호국영령을 위해 해마다 대제를 올리는 달전사 주지 원명 불교의례, 수륙재의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다
  • 김태균기자
  • 승인 2018.05.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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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한불교 불음원 달전사 수륙재보존회 주지 원명

 

                                   호국영령을 위해 해마다 대제를 올리는 달전사 주지 원명 

                            불교의례, 수륙재의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다

                                                          (사)대한불교 불음원 달전사 수륙재보존회 주지 원명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서 떠도는 외로운 혼령과 아귀들에게 불법과 음식을 베풀어 구제하는 불교의식을 말한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나지만 보통 2~3일이 소요되는 규모가 큰 의식이다. 고려와 조선 초까지만 해도 왕실과 민생의 안녕을 구하고 민심을 화합하기 위해 범국가적으로 실시했다. 의식이 진행되면 불교의 음악인 범패와 함께 바라무, 착복무(나비춤), 법고무가 펼쳐진다. 이른바 수륙재는 불교종합예술의 결정체인 것이다. 경남 함안군 칠원읍에 자리한 달전사는 이러한 수륙재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사찰이다. 주지 원명은 해마다 호국보훈의 달 6월 6일이면 호국영령을 위해 수륙재를 올린다. 절을 찾는 신도들이 부처님께 올린 시주를 모아 수륙재로 회향하면 그 공덕이 모두 신도들에게 돌아간다는 원명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복밭을 잘 일구어 큰 복을 받으라, 달전사(達田寺)

법당에 들어선 원명은 불전으로 나아가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다. 두 손을 고이 포개 합장을 하고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20살에 출가하여 강원도 태백시 범패사에 들어온 지 7년만이다. 1987년, 가세가 기울어 어렵다는 부모를 모른 척 하고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없었다. 깊은 고민 끝에 그는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모를 봉양하지도 못하는 자가 어찌 부처를 모실 수 있으랴’ 바랑을 둘러맨 원명은 범패사 일주문을 뒤로하고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원명의 고향은 경상남도 창원(현재 행정지)이다. 태어나기는 창원시 진해구에서 태어났고 자리기는 마산회원구에서 자랐다. 고향에서 부모와 재회한 지 얼마 후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똑 같은 꿈을 세 번이나 꾼 것이 더 신기했다. 꿈속에서 그는 청와대에 갔고 그곳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참 잘 만났소, 함께 어디 좀 갑시다”

박 대통령은 반갑다며 악수를 하고는 원명을 차에 태웠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이었다. 차에서 내린 원명은 박 대통령을 뒤 따라 협소한 산길을 올랐다. 그 끝에는 조그마한 절이 있었다. 보살님 서너 분이 나와 합장을 했다. 절 뒤로 돌아가니 승복을 입은 승려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절 규모와 다르게 장작과 쌀가마니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절은 작은데... 잘 사는 절인가 보구나’ 원명은 생각했다. 절을 둘러보고 있는 원명을 박 대통령은 절 마당에 놓인 평상으로 불러 앉혔다. “이 절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던 중이었소, 오늘 이 절을 찾아 온 것은 그대에게 이곳을 맡기기 위해서 였소” 원명은 화들짝 놀랐다. “제 나이 이제 스물일곱인데 어찌 이 절을 맡겠습니까. 안됩니다!” 원명은 재차 사양했지만 박 대통령의 고집도 보통이 아니었다. 원명은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이후 똑 같은 꿈을 두 번이나 더 꾸었지만 원명은 꿈을 믿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지인을 통해 함안군 칠원읍 소재의 터를 소개받았다. 인적이 드문 깊고 깊은 산중에 있는 자그만 밭 뙤기였다. 옆으로는 계곡물이 아랫마을로 구불구불 흘러 내려갔다. 원명은 고민했다. ‘그래 욕심낼 것이 뭐 있겠느냐, 목탁치고, 염불하고 부모님 봉양하며 살 수 있으면 되었지’ 원명은 여기저기 돈을 빌려 이곳에 작은 법당과 요사채를 짓기 시작했다. 불사를 짓는 다는 소문이 인근 마을로 퍼지자 마을 주민들이 함께 거들기 시작했다. 원명은 산 아래 있는 달전 마을의 이름을 따 절 이름을 ‘달전사(達田寺)’라 지었다. ‘밭을 잘 일군다’는 마을의 이름처럼 ‘복 밭을 잘 일구는 절’이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에 어렵게 지어졌던 법당과 요사채는 사라지고 없고 그 자리에 웅장한 대웅전과 삼성각, 관음전, 용왕각이 들어섰다. 관음전 앞에는 9층 석탑이 위용을 자랑한다. 이 석탑 안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님 사리 4과가 모셔져 있다. 30년 전 꿈속에서 만났던 그 작은 절은 이렇게 창건 될 달전사를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수륙도량 전경
바라무

 

 

 

 

 

 

 

 

착복무
참석대중의 모습
불자의 참배

 

 

 

 

 

 

 

 

 

 

 

 

 

 

 

 

기념촬영

 

주지 원명이 지키고자 하는 불교의례, 수륙재

수륙재(水陸齋)는 물과 육지에서 죽어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영혼들과 아귀들에게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풀어 공덕을 쌓고자 하는 불교 의식이다. 주지 원명 스님은 달전사를 짓고 3년이 지난 그의 나이 30세에(1991년) 수륙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이면 6.25전쟁 당시 함안 인근 낙동강 전선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천도하기 위해 수륙재를 올린다. 6.25 전쟁당시 함안 격전지는 열아홉 번이나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격전지로 적군과 아군은 물론 민간인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희생이 있었던 곳이다. 처음에는 함안 여항면의 6.25격전지 민안비가 있던 곳에서 함안불교사암연합회 스님들과 함께 지냈다. 그러다 10여 년 전부터 달전사로 옮겨 주관하게 되었다. 수륙재를 치르게 되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원명스님은 “음력 4월 초파일 등 절에 들어오는 시주 돈은 내 돈이 아니다”며 “그 돈을 모아 수륙재를 지낸다”고 말했다. 또 “시주 돈으로 수륙재를 지내니 그 공덕과 복덕이 모두 시주자들에게 돌아가 얼마나 좋으냐”고 덧붙였다. 수륙재를 봉행하게 되면 불법을 강설하는 의식을 하게 되는데 이때 불교 음악인 범패가 불려지고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과 같은 작법무를 추게 된다. 원명 스님은 범패와 작법무의 달인이다.

현재 한국의 수륙재는 크게 범패를 기준으로 경기지역 범패와 영남지역 범패로 구분된다. 경기지역 범패는 국가주도의 수륙재로 전승되었고 영남지역 범패는 민간주도의 수륙재로 계승되었다. 국가주도 수륙재로는 서울 은평구의 진관사, 강원도 동해시의 삼화사가 대표적이고 민간주도 수륙재는 경남 창원의 백운사(아랫녘수륙재)가 대표한다. 이 세 곳은 현재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달전사 수륙재는 영남지역의 통범범패 양상을 따르고 있다.

원명 스님은 지난 해 말 ‘수륙재(水陸齋)의 설행양상(設行樣相)에 대한 비교(比較) 연구(硏究)’를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진관사와 삼화사, 백운사를 중심으로 기술된 이 논문에는 수륙재의 기원과 전개과정, 불교의례와 의례문의 간행,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수륙재의 설행 양상과 의미를 비교하고 있고 의식으로 행하는 범패와 작법무에 대해서도 비교 고찰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수륙제의 구조 및 문화적 함의』, 『수륙재 의례문화에 나타난 봉송의례에 대한 고찰』, 『함안의 불교문화와 수륙재』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원명 스님은 “앞으로 풀어가야 할 난제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러한 논문을 통해 불교전통의례인 수륙재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향후에는 경기지역 범패에 비해 비교적 연구가 부족한 영남지역의 범패양상을 정립하고 이를 통해 수륙재에 대해 보다 더 깊은 고찰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원명 스님은 달전사 수륙재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현재 경상남도에 무형문화재 심사를 신청 해 놓은 상태다. 이와 더불어 신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달전사 수륙재에서 사용하는 의례문을 번역한 『무차수륙범음집(無遮水陸梵音集)』도 집필해 출판했다. 올해 초 위덕대학교 불교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한 원명스님은 현재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의 연구위원이자 함안불교사암연합회와 달전사수륙재보존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함안의 신행단체

함안불교사암연합회 산하에는 함안불교신도회와 함안바웃다합창단이 있고, 전국 공무원불자회 소속인 함안공무원불자회가 있다. 연합회 소속 사찰의 불자들이 모여 결성한 두 단체와 공무원불자회가 지역의 불교 포교를 위해 활동하는 연합회를 도와 일선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 모습은 함안불교의 자랑거리다. 특히 가장 늦게 결성한 합창단은 하나되는 화합을 기치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본래의 시작은 함안불교연합합창단으로 출발하였지만 더 큰 발절을 위하여 함안바웃다합창단으로 단명을 개칭하였다. ‘바웃다’라는 단어는 엄연히 불교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합창단을 결성하고자 원을 세웠던 연합회 회원스님과 첫 모임을 한 몇몇 불자들은 “30명만 모이면 좋겠다”라고 걱정도 했었지만 단원모집을 광고하자 기대 이상의 단원이 모였고 현재는 50여명에 이른다. 연합회 회장 원명스님은 “기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단원간에 화합하는 불자의 마음이 우선이고, 신심으로 찬불하며 불음을 노래한다면 불자로서 긍지를 가지게 되고 지역사회의 본보기가 되어 불교 포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의의를 말했다.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스님은 이 외에도 함안군청에 근무하는 불자들의 지도법사를 맡으며 포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정관념을 버려라’ 옳고 그름이 없는 생활불교가 정착되어야

원명 스님은 “참선도 좋고 교리 공부도 좋지만 무엇보다 불교가 생활화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작은 것을 실천해 크게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불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중목욕탕에 가서 바가지 쓰고 나서 나갈 때 어떡합니까? 그냥 휙 두고 가지요. 쓸 때는 깨끗이 닦아서 쓰잖아요. 그 마음을 바꿔야 해요. 나갈 때도 다른 누군가가 쓰겠구나 생각하고 닦아서 두는 것, 그것이 사회에 대한 배려고 그것이 불자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스님은 다시 이어서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나는 닦는데 너는 왜 닦지 않느냐’ 그렇게 강요하는 건 옳지 못합니다. 어떤 일에도 옳고 틀리는 건 없습니다. 다를 뿐이죠. 그저 좀 바꾸고 싶을 때는 주변을 탓하거나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다보면 조금씩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생활불교의 실천이다”라고 말했다.

원명 스님은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진 전통 문화가 불교문화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대부분이 농경문화에서 뿌리 내린 유교문화라며 그것을 꼭 고집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예전에는 농경사회다 보니 유교식의 제사가 가능했지요. 현재 사회를 보세요. 가족이나 친지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제사 때가 되면 가족 간에 친지간에 마음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늦은 시간 모여 제사를 모시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먼 길을 돌아가는 비효율적인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자면 가족과 친지가 모두 모일 수 있는 집안의 추모일을 정해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고 가족과 친지의 만남을 통해 우애를 다지는 것입니다. 현대의 제사의 의미는 조상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추모의 의미를 담는 것이지 꼭 돌아가신 기일 날을 중시해서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모두 유교문화에요. 이제는 현대에 맞는 추모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고 추모방법은 불자들이 어렵지 않게 스스로 진행할 수 있는 불교식 의례가 있으니 이를 이용하면 됩니다. 유교식 제사상에는 원래 줄기 과일은 안 올라갔어요. 그런데, 딸기, 수박, 토마토 등을 올리고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열대과일도 올리고 하잖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도 올려보세요. 아이들도 추모식에 참석하는 것을 꺼리지 않을 겁니다.”라고 하며 스님은 조선시대 유교 문화로 생긴 고정관념을 깨트려야 한다고 설법했다. “현대사회는 사찰의 법회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초하루, 보름 등 한 달에 각 재일마다 법회를 갖고 공양을 올리는 날이 있는데 꼭 재일의 의미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찰마다 여건에 따라 일요 법회, 가족 법회일 등을 정해 가능하면 불자의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날을 정해 법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울러 “참선이든 염불이든 교리 공부든 불교는 신심(信心)이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꾸준히 정진하다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또 그 마음이 열리는 때가 올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해탈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법을 전했다.

 

30년의 세월,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일 것이다. 그 시간 작은 밭 뙤기에서 시작된 달전사는 이제 어엿한 사찰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어쩌면 수륙재를 통한 원명스님의 원력과 공덕이 그 밑거름이 된 것이 아닐까...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원명스님의 원력으로 함안의 불자들이 더 건강하고 해탈의 길에 한걸음 더 나아가길 바래본다.

 

 

 

 

김태균기자  press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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