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고즈넉한 한옥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핫플레이스가 된 서울의 북촌. 하지만, 북촌이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 사대문 안에 일본인 거주지를 만들기 위해 일식주택을 대량으로 건설하려던 일본에 맞서 우리 한옥을 지키기 위해 조성된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의 압박 속에서도 북촌의 한옥을 지켜낼 수 있었던 건 1920년대 당시 조선의 ‘건축왕’이라 불린 독립운동가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1919년 종합 건축사 ‘건양사’를 설립, 지금의 북촌 가회동, 계동, 삼청동, 익선동 일대의 땅을 대규모로 사들인 뒤 중소형 한옥만으로 구성된 한옥지구를 조성해 주택난에 시달리던 서울의 조선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했다. 오늘날 북촌을 있게 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디벨로퍼(developer)인 셈이다.

조선어학회 사건 생존자들과 함께 1946년 찍은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정세권)

서울시가 역사, 부동산, 건설 등 각 분야 민관협력을 통해 북촌 한옥마을의 숨은 주인공인 독립운동가 기농 정세권 선생의 업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기념사업을 처음으로 추진한다.

그동안 경관 위주로 북촌 한옥을 바라봤던 물리적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문화 도시재생의 성공사례적 측면에서 재조명하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세권 선생의 업적과 그가 일군 북촌 한옥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35년 조선어학회에 회관을 기증한 것을 알리는 기사 기증한 기사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26일(금) 오전 10시 서울시청에서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대한건설협회 서울특별시회, 국사편찬위원회, 종로구와 ‘정세권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협력협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협약식에는 정세권 선생의 친손녀인 정희선 덕성여대 명예교수가 참석해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협약서에 따라 서울시 등 5개 기관은 토론회, 전시회 등 정세권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개최하고, 투어‧전시를 상설화하는 방안도 공동 모색한다. 우선, 오는 2월27일(화) 북촌에서 기농 정세권 선생을 주제로 한 한옥투어와 토론회를 개최한다. 내년에는 3.1운동 100주년과 연계해 기념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929년 조선일보 광고, 관철동, 낙원동, 관훈동, 소격동, 봉익동, 재동 신축 가옥 및 토지 매매 광고

시와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대한건설협회 서울특별시회는 기념사업 추진을 주도하고, 국사편찬위원회는 사업추진과 관련한 자문 및 자료제공에 협조하며 종로구는 북촌 한옥과 관련한 업무를 지원하게 된다.

한편, 기농 정세권(鄭世權) 선생은 1888년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나 1930년 조선물산장려회, 신간회 활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다. 1919년 종합건축사 ‘건양사’를 설립한 후 조선인들에게 중소형 한옥을 저렴하게 제공하며 일본으로부터 북촌지역을 지켜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돼 뚝섬일대 사유지 약 35,000여 평을 일제에 강탈당하면서 사업에 타격을 입었다. 조선물산장려회 활동 등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일식주택 건설에 맞서 한옥을 대규모로 보급하면서 오늘날 북촌을 있게 한 주인공이지만 그 업적에 비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농 정세권 선생을 재조명하는 의미있는 사업이 될 것”이라며 “아울러 민관협력을 통해 서울의 역사문화 도시재생과 디벨로퍼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로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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