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黃眞伊)는 조선시대 시인이며 명기(名妓)였는데, 안타깝게도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경기도 개성(開城)출신으로 기명(妓名)은 명월(明月)이고 일명 진랑(眞娘)이라고도 한다. 중종(中宗)때 어느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나서 어머니의 교육 밑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었고, 시·서(書)·음률(音律)에 모두 뛰어났으며, 거기다가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다.

15세기경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염모(戀慕)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모든 것을 훨훨 뿌리치고 기계(妓界)에 투신하였다.  문인(文人)·석유(碩儒:학식이 많은 이름난 유학자)들과 교류(交遊)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압도하고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修道)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살아있는 부처)이라 불렸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암(知足庵)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정욕으로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다. 이어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徐敬德)을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유혹하려 했으나 실패한 뒤 결국에는 사제(師弟)관계를 맺었다.

이어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친교와 우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水)와 깊은 애정을 맺으며 난숙한 시작(詩作)활동을 통해 나름대로의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동지(冬至)人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 내어>는 지금까지도 애송되는 그녀의 가장 대표적인 시조이다. 그리하여 서경덕 그리고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개성(開城)의 세 가지 뛰어난 존재들 이름이다.

 

여기에 그녀의 <사모하여 꾸는 꿈>을 소개 한다.

 

相 思 夢 상 사 몽

相 思 相 見 只 憑 夢 상 사 상 견 지 빙 몽

儂 訪 歡 詩 歡 訪 儂 농 방 환 시 환 방 농

願 使 遙 遙 他 夜 夢 원 사 요 요 타 야 몽

一 時 同 作 路 中 逢 일 시 동 작 노 중 봉

 

그리는 심정은 꿈에서 만나기를,

만나서 반길 때 님이 날 찾아왔군,

바랄 손 언젤까 다음 밤 꿈길에서,

오가는 길에서 우리가 만나기를.

 

예전에 우리나라의 여류시인들은 사대부들의 시가 감히 담을 수 없는 독특한 세계를 포괄하고 있다. 은근한 기다림 속에 여성적인 끝없는 한(恨)과 원(怨) 그리고 정(情)을 표일(飄逸)하게 노래하고 활달하고 거침없는 애정을 목청껏 노래하기도 한다.

이미 꽉 막힌 세상과 남성 중심의 모진 환경 속에서 이상적인 세계의 동경을 간단(間斷)없이 추구하기도 한다. 진솔한 표현의 사실성, 절제되고 소극적인 사랑, 그리고 꿈에 그리는 이상세계, 열린 세계로의 끊임없는 동경을 이 모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숨죽여 흐느끼며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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