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美人)은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다. 미인이라고 하는 어휘는 중국의 ‘초사(楚辭)’, ‘관자(管子)’, ‘사기(史記)’ 등의 고서에 이미 나와 있으며 여인(麗人)·가인(佳人)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의 미인은 용모가 아름다운 남자, 군주 또는 현인(賢人)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으며, 한대(漢代)의 여관(女官)의 이름으로 사용된 때도 있었다.

미인은 그 시대, 그 사회의 환경이나 조건, 특히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와 결부되어 여러가지 종류의 형태로 나타난다. 미인으로 유명한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 등이 모두 같은 얼굴과 풍속(風俗)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만 보더라도 비너스 조상(彫像)과 같은 조각의 자태미(姿態美)는 그리스 미인의 전형이나 바토우(A.Watteau)·프라고나르(J.H.Fragonard)대에 이르러 그려진 18세기 로코코(rococo) 시대의 우아 취미의 여성은 이것과 사뭇 다르다.

또한 중국에서는 서유럽형(西區型)으로 코가 높은 것을 오히려 싫어하는 경향이었다. 볼에 살이 찐 원만한 당조(唐朝)의 미인은 중국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졌으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허리가 가늘고 살찌지 않은 날씬한 미인이 환영 받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서양에 있어서는 용모와 같은 정도, 혹은 그 이상으로 여성의 신체 자체의 아름다움, 그 균형미와 육체적 매력이 미녀의 요건으로 되어 있음에 반해 동양에서는 미녀라고 하면 먼저 용모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중국에서 미인하면,

첫째, 서시(西施)는 중국 월(越)나라의 미인(美人)이다. 월 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게 패한 뒤에 미인계(美人計)로 서시를 오 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보내니 부차는 서시에게 혹하여 고소대(姑蘇臺)를 짓고 정사를 돌보지 아니하였다. 드디어 구천과 범소백(范少佰)의 침공을 받아 오의 부차는 망하였다.

서시빈목(西施矉目)은 미인 서시가 병이 있어 눈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이때 이것을 본 마을의 못난 여자들이 눈을 찌푸리면 아름답게 보이는 줄 잘못 알고 자기도 눈을 찌푸리니 더욱 못나게 보였다는 고사(故事)에서 온 말이다. 전(轉)하여, 아무런 비판도 없이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 사람의 웃음거리가 됨을 이르는 말이다.

효빈(效顰)도 비슷한 이야기로 전한다. 월 나라의 서시가 불쾌하여 찡그렸든 바, 어떤 추녀(醜女)가 그걸 보고 미인은 찡그린다고 여겨 자기도 찡그렸다는 고사에서, 맥락도 모르고 덩달아 따라서 흉내 냈다. 남의 결점을 장점인 줄로 알고 본뜸을 지칭한다.

서시옥시는 서시와 같은 미인(美人)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이다. 옥시(玉豉)는 오이풀인데, 학명은 Sanguisorba officinalis, 짚신나물과에 속하는 다년초이다. 뿌리는 굵고 높이는 1.5m 가량이며, 잎은 호생(互生:어긋나기)하고 유병(有柄:잎 자루가 있음)에 기수우상복생(奇數羽狀復生)하고 소엽(小葉)은 5~13개이며 난상(卵狀; 달걀꼴)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다. 연중 6~9월에 홍자색 꽃이 수상(穗狀: 곡식 이삭과 같은 모양) 화서로 가지 끝에 정생(頂生: 줄기 끝에 남)하여 피고, 과실은 수과(瘦果; achene, 식물의 열매로 폐과(閉果)의 하나)이다. 산이나 들에 나는데, 한국 내의 각지 및 일본·중국·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한방에서는 뿌리는 <지유(地楡)>라 하여 지혈제(止血劑로 쓰고, 어린 잎은 물에 우리어 식용한다. 일명 수박풀이라고도 한다.

옥시의 시(豉)는 메주(soyben malt) 또는 “물매암이”를 뜻한다. 물매암이는 물매암이과에 속하는 곤충인데, 물방개와 비슷하다. 물무당이라고도 부른다.

둘째, 양귀비(楊貴妃: 719~756)는 중국 당 나라 현종(玄宗)의 귀비였다. 이름은 옥환(玉環), 또는 태진(太眞)이다. 본래는 여도사(女道士)였으나 재색(才色)이 뛰어나 754년에 궁녀로 뽑혔다. 현종의 총애를 받아 일족(一族)이 부귀 영화를 누리다가 종래에는 안녹산의 난에 죽었다.

식물로서 양귀비(Papaver somniferum)는 양귀비과에 속하는 1~2년 초이다. 일명 앵속(罌䅇), 미낭화(米囊花) 라고도 부른다. 양귀비꽃은 양귀비의 꽃인데, 앵속화(罌䅇花), 여춘화(麗春花)라고도 부른다.

중국 제일의 미인은 단연 서시인데, 한국에서는 양귀비가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여자의 고운 얼굴을 형용하는 말로 침어낙안(沈魚落雁)이란 말이 있다. 물고기는 부끄러워서 물 속으로 쏙 들어가고 기러기는 부끄러워서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미인(美人)의 형용이다.

수화폐월(羞花閉月)은 꽃도 부그러워하고 달도 창피스레 숨는다는 뜻으로, 절세미인(美人)의 형용이다.

위의 두 고사는 모두 서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하튼 중국의 미인 중에서 서시와 양귀비는 쌍벽을 이룬다.

서시는 수(瘦: slender)하고 양귀비는 반(胖:fat)하였다 한다. 두 미인의 특징은 다시 말해서 서시는 날씬하였고, 양귀비는 통통하였다고 전한다.

서수양반(西瘦楊胖)이다.

셋째, 왕소군(王昭君)은 중국 전한(前漢) 원제(元帝)의 궁녀였다. 이름은 장(嬙), 소군은 자(字)였다. 절세(絶世)의 미인이었는데 흉노(匈奴)와의 친화책 때문에 호한사 선우(呼韓 邪單于)에게 출가하여 아들 넷을 낳고, 나중에는 호지(胡地)에서 자기 신세를 비관하여 자살하였다.

넷째, 초선(貂蟬)은 어려서부터 사도(司徒) 왕윤(王允)의 관저에 들어와서 노래와 춤을 배우며 살았다. 나이가 열여섯에 이른 초선은 용모나 재간이 출중하고 미색 또한 겸비하여 왕윤이 귀여워하고 있었다. 두 호색한(好色漢)사이에 맞불을 놓아 산불을 끄듯이 연환지계(連環之計)를 쓰게된다. 그리하여 초선에게 빠진 두 얼빠진 영웅이 있었다.

동탁은 포악 잔인하여 악인의 전형이다. 십상시 난을 기화로 수도 낙양에 들어가 대권을 장악한다. 초선에 빠져 여포의 손에 최후를 맞는다. 또한 여포는 이해타산에 따라 거취를 바꾸는 기회주의자이나 무용(武勇)에 뛰어난 인물이다. 형주자사 정원의 양자였다가 동탁에게 매수, 또 장막에게 투항한다. 조조, 유비의 연합군에 붙잡혀 죽는다.

다섯째, 우미인(虞美人)은 옛날 중국 초왕 항우(楚王 項羽)의 총희(寵姬)였다. 늘 항우를 따라 다녔다는 절세(絶世)의 미인이다. 우미인초(虞美人草)는 개 양귀비(Papaver Rhoeas), 양귀비꽃과에 월년초(越年草)이다. 유럽 원산(原産)인데 관상용으로 심는다. 서양에서는 보리밭에 많이 나므로 풍작의 여신(女神), 세레스(Ceres)에 비유하고, 중국에서는 항우(項羽)의 애인 우미인의 무덤에 피었다고 우미인초(虞美人草)라고도 칭한다.

재주가 있는 젊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 재자가인(才子佳人)은 박복(薄福: 두텁지 않은 복)도 하여라. 재자다병(才子多病)하고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 했던가. 재자는 병이 잦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는 기구한 운명에 팔자가 사납다고 한다.

옛날 말에 「박복자(薄福者)는 계란에도 유골(有骨)이라」, 복이 없는 자는 팔자가 사나워서 모든 일이 순조롭지 못하고 의외의 장해가 생김을 이르는 말이다. 서시로 미인계(美人計)의 제물이 되었고, 양귀비는 안록산의 난 때 처형되었고, 왕소군은 한 많은 호지에서 끝내 자살하였고, 초선이는 동탁과 여포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한 많은 신세가 되었고 우미인은 항우의 뒤를 따라 자진(自盡)하였다.

모두 꿈 낳고 한 많은 신세들이었다. 무지막지한 남성중심사회에서 제대로 여자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세컨더리(secondary) 구실로 끝난 불쌍한 인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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