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으니까 사랑이다 / 양여천 시인

 

어쩔 수가 없으니까 사랑이다

어찌할 수 있었다면 그 잔을 받지 않았으리라

어쩔 수가 없으니까 대신할 수가 없으니까

사랑인거다, 사랑했으니까

십자가라도 지고 채찍이라도 맞으며

고통이라도 묵묵히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헤어지려고 그렇게 떠나가려는 널

사랑하지 않았다면 붙잡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가 없으니까 사랑이다

어찌할 수 있었다면 나는 널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나는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사랑이 없어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그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찌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어쩔 수가 그 어쩔 수가 없으니까 사랑이다

해야만 한다면 어떻게라도 하겠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러나 나의 원한 것이 나의 마음대로 되어지기보다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보다

나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었던 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도 버림받고 차갑게 죽어가야 했던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그 사랑이 내겐 어쩔 수 없어서, 어쩔 수가 없으니까

사랑이다, 내가 사랑하려 했다면 난 죽어도 사랑할 수 없었을거다

헤어지려고 떠나가는 널, 감당할 수 없다고 수없이 돌아섰을거다

어쩔 수가 없으니까 널 대신할 수 없으니까

그냥 사랑인거다, 사랑한 건 사랑한거다

사랑했다면 너의 십자가를 어떻게라도 대신 짊어지고

사랑했다면 어떻게라도 채찍을 함께 맞아주며

사랑했다면, 사랑했다면 어떻게라도 그렇게 비겁하게 돌아설 수가 없는거다

어쩔 수 없으니까 사랑이다

절대로 내가 사랑을 선택한 적이 없으니까 사랑이다

그 어떠한 고통에 신음하면서까지도 나를 용서한 그 사랑이 있었으니까 사랑이다

내가 할 수 있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어쩔 수가 없으니까 난 나를 사랑한 그 사랑앞에서

어쩔 수가 없으니까 감히 널 사랑하는거다

어쩔 수가 없으니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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