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소리 / 양여천 시인

 

잘 들어봐

너에게 가는 소리
사르락 사르락 첫 눈 내려 쌓이는 소리
조그맣고 희미하게 들릴 듯 말듯
심장이 도곤대는 소리
천사가 날개를 접고 내쉬는 한숨소리
그 투명한 영혼은 과연 살아 있는 것일까?
엄마 뱃속에서 아가가 양수를 헤치는 소리
발로 차며 볼록거리는 소리
생명이 태어날 준비를 하는 소리
하품하며 기지개를 펴는 소리
꽃이 피어나려고 봉오리가 떨리는 소리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소리
네가 나에게 오는 소리
하얗게 갈대숲사이를 헤치고
햇살처럼 밝게 웃음짓는 소리
정답게 어깨를 기대고 쌔근쌔근 잠든 소리
천사가 내 어깨에 내려앉는 소리
그대는 정말 내 곁에 실재하는 것일까?
믿기지 않을만큼 아름다웠던
첫 눈이 스르륵 스르륵 녹아내리는 소리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아가가
햇살에 눈이 부셔 실눈을 뜨는 소리
자그마한 핑크색 주먹을 앵하고 쥐는 소리
살그머니 발을 뻗어 제 영역을 확인하는 소리
엄마의 품에 안겨 힘차게 젖을 빠는 소리
쥘 수 있는 만큼 볼 수 있는 만큼 엄마를 확인하고
행복에 겨워 포근하게 잠이 드는 소리
모든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케 하는 소리
모든 불행을 행복 하나로 뒤집어 놓는 소리
하늘이 다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져도
네가 내 안에서 날개를 다는 소리
살아갈 희망을 다잡고 힘차게 다시 일어서는 소리
살아갈만큼 살 수 없을만큼
내 영혼과 생명이 뜨거운 열정의 온기로
조그맣게 아주 조그맣게 시작되는 소리
네가 내 곁에 처음 다가와 뻗어 주었던
내가 네 곁에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해 주었던

들어봐 모든 이유에는 소리가 있어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아팠던 너와 내 영혼이 이렇게 함께 서 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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